도서

<추의 역사>와 괴물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0. 2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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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역사> 4장 괴물들과 기이한 것들에서는 일반적이거나 ’정상‘ 범주에 들지 않아 기괴하게 여겨지고, 따라서 이상하게 시선을 끄는 대상, 즉 괴물에 대해 다룹니다.

다음의 시를 살펴보시죠.



루이지 풀치 ‘모르간테’,  V (1483~1482)
그는 머리가 곰 같고
털이 수북하고 의기양양하며,
한 입에 바위를 박살 낼만큼
강한 엄니를 가졌네.
혀는 온통 비늘에 덮였으며
한쪽 눈은 가슴 한가운데 붙었으니
부리부리한 눈알은 폭이 두 뼘이라.
수염은 머리털만큼 덥수룩하고
두 귀는 당나귀 귀요
길고 이상한 팔엔 억센 털이 났네.
가슴과 몸도 온통 털투성이요,
손과 발엔 긴 손톱 발톱이 자랐네.
마른 땅에선 신발을 신지 않고
맨발에 벌거벗고서 개처럼
짖으면서 다니는구나.
누구도 이처럼 흉측한 괴물을 본 적 없으니,
손에는 마가목으로 만든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니네.
풍파에 시달렸어도 까마귀처럼 검네.



위의 시에서 괴물로 묘사되는 대상은 외모가 타인과 다른 사람입니다.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닌다는 서술을 제외하면 모두 모르간테라는 괴물(혹은 야생 인간)이 얼마나 기괴한 외양을 지녔는지를 제법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지요.



우리 내면의 괴물


한편 제가 오늘 느낀 괴물의 존재는 위의 시와는 달리 주로 내면에 있었습니다. 수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부정적인 말들을 급우들에게 쏟아내는 것이 ’인싸‘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듯한 어느 학생의 모습에 정말 염오감이 들더군요. 두 번째로 괴물처럼 느껴졌던 대상은, 수업을 마칠 무렵 자신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친구에게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하는 어느 학생의 모습에서였습니다. (세 번째부터 네 번째 괴물스럽다고 여긴 대상에 대해서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대상은 세 번째와 네 번째 대상에게 굳이 적대감을 감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만하고, 자제력을 잃었으며, 누군가의 낮은 도덕성에 대해 시퍼런 칼날을 겨누며 자신의 무결함과 정당함을 호소하고 있는, 혐오와 차별의 위험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혐오하고 있는 모습의 괴물 말이지요.



괴물의 슬픔


위의 시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듯한 다음 그림도 한 번 보시죠.

피에르 보에스튀오의 <괴물 이야기>


괴물의 모습을 보고 놀라 새와 벌레들도 나무 사이로 숨어버린 것인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괴물의 눈빛이 참으로 외로워 보입니다. 억센 털을 깎아도 보고, 손톱 발톱을 손질해 보아도 다가오는 이는 없고,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은 도대체 변함이 없어 언젠가부터는 외모를 가꾸어 보려는 노력조차 멈추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시를 볼까요.


맨발에 벌거벗고서 개처럼
짖으면서 다니는구나.

개처럼 짖는다는 것은 누구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일까요? 괴물은 정작 누군가를 겁주기 위해 짖는다기 보다 아파서 신음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손에는 마가목으로 만든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니네.
풍파에 시달렸어도 까마귀처럼 검네.

또 곁에 있던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였더니 그나마 돌을 던지거나 욕지기를 날리는 행위는 줄어드는 것을 보고, 살고 싶어서 몽둥이를 들고 다니게 되었는지도 모르고요. 한편 괴물은 아무리 모진 말들과 시선들에 마음을 다쳐도 바래지지도 무뎌지지도 않는 까맣게 타들어간 생속을 지녔는가 봅니다.  



어쩌면, 자신이 가장 괴물 같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누군가를 괴물로 몰아붙이며 우리는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죄인 중의 괴수이다(오늘 글의 버전을 따르자면 ‘그래 내가 제일 괴물이다’ 정도가 될는지요?), 인정하고 나니 하루종일 찌푸렸던 마음 주름이 좀 펴지는 것 같습니다.



삶은 어렵네요.
평안한 밤과 새날 맞이하셔요.



글과 그림은 <추의 역사> p.118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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