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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 독서 일기 #1 - 하지 않으면 좋을 말들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0. 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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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이어 클레어 키건의 작품 <맡겨진 소녀>를 읽었습니다. 키건 소설의 매력은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다는 점과, 짧은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 아주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하지 않으면 좋을 말들'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분석해보려 합니다.
 
소설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생의 출생을 앞두고 소녀는 한동안 킨셀라 부부의 집에 맡겨집니다. 소녀의 아빠가 엄마의 고향인 해안쪽으로 소녀를 맡기러 운전해 가는 묘사나, 킨셀라 아주머니가 소녀의 엄마의 안부를 묻거나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생일 엄마에 대해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킨셀라 아주머니가 소녀의 외가쪽 친지일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책에는 대화체를 포함하여 인물 사이에 오가는 말들에 대한 소개가 많이 나옵니다. 소녀의 아빠의 입부터 주목해 보죠.
 
 

#1. 하지 않으면 좋은 말들

 
"수양버들이잖아." (11)
 
아픈가 보다고, 차창 밖에 보이는, 가지가 땅에 끌리는 나무들을 염려하는 소녀에게 아빠는 말합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의 마음에 공감하는 기색은 전혀 없네요. 물론, 별로 사색할 기분이 아니라거나 가지가 늘어진 이유가 '수양버들'인 것이 사실이어서 말해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아빠의 언어 습관에 대한 엄마의 평가입니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말해. 어차피 늘 그러잖아." (15)
 
상의를 실컷 한 후에도 소녀의 아빠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대로 말을 하곤 하는가 봅니다. 올해 농장일이 참 잘 되었다고 킨셀라 아주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노름을 하다가 집안의 재산을 말아먹은 사실에 대한 자격지심이 발현된 것 같기도 하네요.
소녀의 아빠는 딸이 먹을 것을 엄청나게 축낼 것이라거나, 말썽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등 딸에 대해 비난하는 말도 합니다. 없는 살림에 자식은 많고, 돌봐줄 여력은 되지 않아 아내쪽 친지에게 아이를 맡기는 처지에 고마워하거나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대신 애꿎은 소녀를 비난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모습이 형편없다고 여겨졌는가 봅니다. 인정할 용기가 없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다니요. 이에 그치지 않고 저주인지 경고인지 모를 말을 퍼붓기도 합니다.
 
"불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너." (21)
 
그냥 아주머니 말씀 잘 듣거라, 하면 안 될까요? 하고 소설 속에 들어가서 소녀의 아빠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출처: 픽사베이

 
 
 
동생이 태어나고 집에 돌아온 소녀를 보고 하는 말들도 가관입니다.
 
"아, 탕아가 돌아왔네." "말썽은 안 부리던가요?" (92)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는 킨셀라 아저씨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합니다.
 
"제대로 돌보질 못하시는군요? 본인도 아시잖아요." (93)
 
잘 먹이고 잘 입히며 돌보아준 은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킨셀라 부부에게는 자식을 잃은 슬픔이 있거든요.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다니.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실은 소녀의 아빠뿐만 아니라 시내에서 만난 애엄마, 초상집에서 만난 밀드러드 아주머니 등 타인에 대해 너무 함부로 이야기하는 인물들이 몇몇 소개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도 타인에 대한 험담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키건은 무신경한 말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직간접 경험을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봅니다.

제가 입밖에 꺼내어 온, 참으로 많은 부끄럽고 허망한 말들이 떠오르자 소녀의 아빠에 대한 분노가 일순간 부끄러움으로 바뀌네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입술의 말로 생명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해주시라고, 그럴 수 있도록 마음이 생명의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지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는 밤입니다.

이웃에 대한 환대 그리고 한 영혼의 회복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잖아요!!
 
 
 

 
 
 
다음 글에서 <맡겨진 소녀>의 두 번째 독서 일기, "말하지 않음의 아름다움"이 이어집니다.
 
평안한 밤과 기쁜 새날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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