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아이 2> 독서 일기 #2 - 밥과 친구와 선물
#1. 밥
주연은 이끌리듯 죽은 친구, 서은의 집에 간다. 그리고 왜 왔느냐며 돌려 보내려는 서은 엄마에게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배가 고파 죽을 것만 같아도 먹을 수 없던 밥이, 왜 서은의 집에서 생각났을까. 밥을 먹는 행위는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생명을 갈구하는 행위이다.
밥과 생명의 놀라운 연관성은 요리 동아리에서도 확인해왔다. 요리 동아리에서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를 해서 나눠먹고, 뒷정리를 위해 협동하는 모든 과정에 제법 성실하게 임해온 몇몇 아이들이, 알고 보니 일반 교과 시간은 물론이고 학급 활동 등 학교 생활 전반에서 지극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담임 선생님과 다른 교과 선생님들을 통해 알고 얼마 전에도 적잖이 놀랐다. 요리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먹는 일은 곧 생에의 의지이다. 요리가 치유와 관련 있다는 설명을 떠올리며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또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식사는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므로, 떡을 떼는 일은 어쩌면 구주의 가장 본연의 임무이다.
주연은 서은의 엄마가 주연에게 밥을 차려주는 행위를 통해, 먼저 서은에게 괴로움을 주었던 자신을 용서하고 '살려'주기를 바랐으며, 딸과 삶에의 의지를 함께 잃었던 서은의 엄마가 '밥 짓는' 행위를 통해 '생명을 돌보는' 힘을 되찾게 되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주연을 위한 밥을 짓기 위해 서은 엄마는 슈퍼에서 장을 본다. 그리고 슈퍼 사장님은 직감한다. 서은 엄마가 (그리고 주연이, 그리고 주연의 엄마가, 그리고 주연의 아빠가, ...)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2. 친구
<죽이고 싶은 아이 2>에는 다음과 같이 친구인 사람들과, 친구가 아닌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2.1. 친구가 아닌 사람들
- 주연의 신상 털기에 여념이 없는 유튜버와 주변 사람들은 주연의 친구가 아니다.
- 주연과 주연의 아빠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걱정하는 듯 이야기하지만 상처만 줄 뿐인 주연의 이모는 주연 엄마의 친구가 아니다.
2.2. 친구인 사람들
- 신지훈 형사는 종결될 수 있었던 사안을 재수사하고, 주연의 무죄를 밝혀낸다. 신지훈 형사는 주연과 주연의 부모의 친구이다.
- 슈퍼 사장님은 자신을 서은의 친구라고 칭한다. 그리고 곡기를 끊다시피 한 서은 엄마의 집 앞에 먹거리를 놓아두고 온다. 슈퍼 사장님은 서은과 서은 엄마의 친구이다.
- 서은 엄마는 주연을 위해 밥을 차려주고 주연은 밥을 먹으며 서은 엄마가 서은을 추억하는 일을 돕는다. 서은 엄마와 주연은 친구이다.
- 주연의 새로운 담임 선생님은 주연에게 급식을 함께 먹자고 청한다. 담임 선생님은 주연의 친구이다.
- 선배 언니들이 귀신을 보는 아이라며 주연의 험담을 하는 아이들에게 똑바로 살라고 혼쭐을 내준다. 선배 언니들은 주연의 친구이다.
- 주연의 엄마는 주연의 웃음을 되찾아주고자 한다. 주연의 엄마는 주연의 친구가 된다.
#3. 선물
주연이 삶을 회복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후렴' 같은 문장들이 나온다.
그런 날이 있다. 별일 없이 물 흐르듯 하루가 흘러가는 날. 주연은 오늘 그런 날을 겪었다. 어쩌면 주연에게 이런 날이 아주 가끔은 찾아올지도 몰랐고, 그런 하루들이 조금씩 더 자주 찾아와 자신을 평범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89)
별일 아닌 일들로 시간이 흘러갔다. (209)
별일 아닌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 (211)
서은 엄마가 지어준 밥을 먹은 후로, 별일 아닌 일상이 주연에게 기적처럼 찾아온다. 그리고 주연에게 일상이라는 선물이, 자리잡는다. 그야말로 present이다.
난 살면서 뭔가 당첨된 일이 없는데, 최근 계속 선물을 받는다. 헌책방에서 남긴 한줄 평이 당첨되어 선물을 받았고, 강연장에서 발표를 하고는 초판 1쇄 발행일이 일주일이나 남은 책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죽이고 싶은 아이 2>라는, 새기고 싶은 문장이 너무 자주 나오는 책도 선물 받았다. (물론 아이들이 엄마도 좀 읽어보라며 권유한, 선물을 받은 시점은 한참 지나긴 했다;;)
그리고, 주연처럼 '별일 아닌' 듯한 기적같은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선물이다.
이렇게 잘 사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온 것도, 하늘이 주신 선물이다.
정말 그렇다.
아참, 오블완 챌린지 선물도 받겠네! 책 원고도 부지런히 써야겠다.
감사가 넘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