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것> 독서 일기 - 못 볼 것을 봐야 하는 사람들
나는 공포영화를 싫어한다. 잔상이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하나 베르부츠의 <우리가 본 것>은 그 어떤 공포물보다 무서운 책이다. 소설이지만, 실제 상업용 콘텐츠의 감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어낸 현실의 이야기이고, 누군가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정말 끔찍하다.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 콘텐츠가 유해한지의 여부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걸러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제 3세계 노동자들, 즉 '인간지능'이 포르노, 자해, 살인 등 폭력적인 콘텐츠부터 문화적 차별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어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고 해당 영상을 삭제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
<우리가 본 것>은 이러한 유해 게시물 삭제 노동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미디어 콘텐츠 검수 회사에 취직했던 케일리가 견디지 못해 퇴사한 후 심리분석가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지난 기억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유해 게시물인지의 여부와 유해 게시물의 종류를 분류하는 일을 정확도 높게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폭력에의 지속적 반복적 노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더해져 노동자들은 (건너편 건물에서 지붕 수리를 하고 있는 사람을 투신하려는 중인 것으로 착각하는 등) 인지적으로 혼동을 경험한다. 이뿐만 아니라 알코올과 마리화나에 점차 의존하게 되고, 폭력적 언어를 농담처럼 주고 받으며, 관리자에게 총을 들이대는 등 폭력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현실과 영상을 통한 기억이 한데 섞여 가학적 성행위를 모방하게 되는 등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견디다 못해 퇴사를 한 지 십육 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주인공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심리 상담을 필요로 하게 된다.
영상을 통한 간접 경험일지라도 사건을 실제 경험한 것과 유사한 정도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남는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의 아동 청소년 및 성인 인터넷 사용자의 정신 건강을 위해 '못 볼 것'을 걸러내느라, 누군가는 못 볼 것을 봐야만 하고, 정신적 상흔(으로 인해 죽지 않는다면)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세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았던 부탄의 행복지수가 127위로 폭락한 것은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소수 부족의 젊은이들이 포르노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공동체가 병들어간다고 한다.
인간의 폭력성을 여과없이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한데 모여 더욱 증폭시키는 괴물같은 매체가 우리와 우리의 형제들을 집어 삼키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할꼬... 한숨만 나온다.
정말로 기도가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