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군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뢰
지속적인 멸시와 비웃음으로 인해 공황장애 증상을 겪고 있는 준형(가명)이가 조퇴를 하기 위해 가방을 싸는데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말한다.
"준형이 옷은 어디서 사는지 궁금하다."
"준형이는 어디에 살까." (여기까지는 웅성웅성거리는 소리로만 들렸고, 아래와 같이 말한 학생을 따로 불러 이야기했을 때 알게 된 내용이다.)
"준형이 집에 살겠지."
내 귀를 의심했다. 바로 옆에 있는 아이에 대해 아이들이 대놓고 쑥덕거리고 있었다. 마치 아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벽인 것처럼. 아이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더욱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거면 자퇴를 하던가..."
아이는 무시당해 마땅할 뿐만 아니라 학급의 행복을 위해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는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다가 아이들이 이렇게 괴물같은 모습이 된 걸까.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냐고 절규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졌다.
이런 순간에는 특히나 무력감이 밀려올 수밖에 없는 진술인데, 교사는 교육을 통한 변화를 꾀하는 사람이다.
빅터 프랭클을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간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든다.
그(J박사)는 내가 일생 만나 본 사람 중에서 가장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사람, 즉 가장 악마적인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스타인호프의 도살자'라고 불렸다. (중략) "죽기 전에 그(J박사)는 선생님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위안을 주었지요. 그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덕적 차원에 도달해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감옥에 그렇게 오래 있는 동안 내가 사귄 사람 중에서 가장 좋은 친구였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192~193면
이전에 알고 있던 J박사가 악마적인 모습에서 좋은 친구의 모습으로 바뀌었음을 예로 들며, 빅터 프랭클은 아무리 악독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인해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일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그 사람의 현재 모습이 평생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 짓는 교만한 자세를 지녀서도 안 된다. 준형이에게 끔찍한 말들을 늘어놓던 아이들(군중심리로 인해 더욱 용감하고 또 노골적으로 악한 본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도 어쩌면 어떤 계기로 인해 타인에 대한 윤리를 깨닫고 변화할지 모른다.
교사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신뢰하는 사람이기에 오늘 목격한 사례를 업수이 여겨서는 안 된다. 분명한 교육적 처방이 이루어져야 하고, 효과적이고 집중적인 지도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 염려된다며 모둠 책상을 만들 때 책상을 붙이지도 않고 저만치 뚝 띄어놓고 앉아 있곤 하던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무겁고 슬프다.
준형이를 위해 기도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