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주인과 일꾼> 독서 일기 - 누가 니키타를 주정뱅이로 만들었을까?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일꾼>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뒤에 수록되어 있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주인과 일꾼>의 '일꾼' 니키타는 50세의 농부입니다. 근면성실하고, 일 솜씨가 좋고, 힘도 있고, 친절하며, 유쾌한 성격을 지녔고, 정직하며, 동물과 교감도 잘해서 말을 포함한 가축을 잘 부립니다. 술만 취하지 않으면요.
(1년에 두어 번이라고 본인은 우기고 싶겠지만 실은) 제법 자주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는데, 안타깝게도 술버릇이 아주 고약합니다. 아내의 옷상자를 부수고, 값나가는 옷이며 속옷을 산산조각 낸다고 하네요. 술이 깨면 아내에게 품삯을 모두 갖다 바치고, 푸대접을 받으며, 집에 들어와 살라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가장입니다. 집에서만 새는 바가지가 아니었던지, 술만 마셨다 하면 소란을 피우거나 시비를 걸며 불화의 씨앗이 되는 바람에 주인집에서도 여러 차례 쫓겨났는가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다른 마을 출신 농부이자 통 제조공인 세입자와 20년 정도를 함께 살아온 모양입니다. 맨 정신인 상태인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을 것 같네요. 혀를 쯧쯧 차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요, 그냥 고약하고 한심한 술꾼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석연찮은 부분들이 소설 이곳저곳에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일곱 살짜리 꼬마가 50살의 농부의 이름을 '미키트'라고 잘못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만 7세 정도면 모국어 발음체계에 맞게 조음기관이 발달하여 발음을 제법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나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아이는 3~4세 즈음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니키타 아저씨의 이름을 부르던 그대로 지금도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안일을 돕는 일꾼의 이름 정도 전혀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틀려도 '상관없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니키타의 주인인 바실리도 이것을 따라 '미키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린아이가 잘못 발음한 나의 이름을 어른이 흉내 내어 부른다고 생각해 보시면, 이것이 얼마나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을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한편, 주인의 아내는 니키타를 '니키티슈카, 니키트슈카(둘 중 하나는 오타인지도 모릅니다)' 등 애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런 애칭은 다정함의 표시뿐만 아니라 얕잡아보는 의미도 담고 있다고 하네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니키타가 술에 의존하지 않고는 버텨내기 힘들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주인 바실리 안드레이치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듭니다. 먼저, 주사가 심해 쫓겨난 전력이 있는 니키타를 바실리가 인류애가 넘쳐서 다시금 와서 일하도록 만든 것은 아니고요, 니키타의 품삯이 다른 일꾼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저렴한 것이 아니고 이미 가지고 있던 물건이나 가축을 '비싸게 값을 쳐' 현금 대신 주면서 대강 '퉁칠' 수도 있어서 말이지요. 다 낡아빠진 물건을 선심 쓰듯 주는 주인 앞에서, 지난달에 이어 이번 달 급여도 구경하지 못하는 니키타의 심정을 상상해 보세요.
이렇게 급여를 떼어먹을 뿐만 아니라 바실리는 니키타의 약점을 아무렇지 않게 들추며 비아냥거립니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날 말을 타고 어딘가 가면서 바실리는 다음과 같이 농담을 합니다.
그런데 안사람에게는 통 제조공에게 술을 주지 말라고는 했는가?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니키타의 나쁜 술버릇을 조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내연관계에 있는 듯한 통 제조공을 들먹이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하고 있네요. 바람 소리로 인해 못 들은 것인지, 아니면 바람 소리를 핑계로 못 들은 척을 하며 쓰린 마음을 다스리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니키타를 위해 친절하게 더 큰 목소리로 같은 농담을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농담하는 재주가 뛰어난지 스스로 감탄하면서 말이지요. 주먹을 한 대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까요?
심지어 주인은 니키타에 비해 사리판단 능력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칫 길을 잃기 쉬운 방향 대신 조금 둘러가더라도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권해도, 길을 잃고 헤매는 주인에게 그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마차를 몰아야 할 것 같다고 조언을 해도, 주인은 도통 들을 생각을 않습니다. 살을 에는 바람이 니키타의 닳아 해진 외투 사이로 들어오든 말든, 바보 같은 주인은 고집을 부립니다.
도덕성도 떨어지고, 공감능력도 떨어지고, 야비한 데다가 멍청하기까지 한 주인 아래에서 멸시를 참아가며 일하기란 얼마나 고된 일일는지요? 그런데도 니키타는 주인의 명을 받을 때면 '유쾌하고 기꺼이, 빠르고 경쾌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일이 즐거운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니키타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동물뿐인 것만 같습니다. 주인의 명을 받은 니키타는 마구간에 가 홀로 있던 종마에게 말합니다.
뭐야, 외롭다고, 외로웠다고, 바보야?
외로웠던 것은, 외로웠느냐고 다독임을 받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니키타 자신일지도 모르겠네요.
한편, 나보다 바보 같더라도 신분이 높은 이를 섬기는 일이 당연시되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계층이 '무능력'과 동일시되어 가난에 대한 도덕적 책임까지 지게 되었다고 하지요?
세상 살기 참 녹록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짐을 나눠 지며, 무게를 조금은 가볍게 해주는 삶들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