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사랑이다
요한일서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삶이 힘겨운 아이들이 계속 눈에 보인다.
교실에 들어가기가 너무나 힘겨워서 학교에 오지 않고, 아침에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잠이 지나치게 많은 상태도 우울감이 심한 것이라고 들었다) 한 아이에게 응원 '마사지'를 해주어야 할 필요성을 더더욱 느꼈다.
힘내 친구야, 한 마디의 말이 어떤 위력을 가졌는지를 최근 몸소 체험했기에 더욱 다짐하게 된 것이다.
하트 모양 떡메모지를 나눠주고 응원과 격려의 한 마디씩 써서 칠판에 부착한 종이에 붙이자고 했다. 이름을 써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은 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보아, 마음의 거리가 아주 멀어진 상태임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 앞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어떤 형태로든)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규모 테마여행 중에(외부 행사를 할 때에는 외톨이들이 특히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학생 지도에 있어 결정적 순간에 포함된다.) 겉돌고 있는 어느 다른 아이와 함께 말을 섞지 않는 이유를 묻자 '저희가 별로 친하지 않아서요.'라고 해맑게 답하며 선을 긋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교사가 보기에는 정말 사랑스러운 고등학생들의 모습이지만 동시에 정말 무서우리만치 철저하게 누군가를 배제하는 집단이기도 한 것이다. 어찌 보면 나의 내집단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기도 하고,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와 붙인 떡메모지들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던 중이었다. 운동 좀 해라, 라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반사적으로 '이거 쓴 사람 누구야!'하고 포효했다. 공감을 못해도 이렇게 심각하게 못할 수가 있으며 폭력적이어도 어쩜 이렇게 폭력적일 수 있을까, 싶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교무실에 뒤따라 들어와서는, 자신도 체중이 아주 많이 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운동을 통해 살을 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아이 눈에 물방울이 반짝였다. 표현력 미숙, 그리고 사회성 부족의 문제를 지도하기 전에 또 다른 공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랬니, 그랬구나, 네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야속했겠다. 아이가 좌절감과 실망감을 가득 담아 네, 한다. 하지만 그런 멋진 경험에 대한 설명 없이 전해진 메시지가 친구에게 어떻게 들릴 수 있을지도 알겠지, 묻자 비슷한 목소리로 네, 한다.
이렇게 하자. 선생님이 내일 아침에
공개사과를 하면 어때?
아이가 내 눈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네 경험담도 함께 이야기해도 될까?
공개 사과를 한 후 우린 눈빛만으로도 아주 많은 말들을 전달할 수 있어, 덧붙였다. 아이도 느지막이 등교해서 친구들이 표현한 마음들을 조심스레 가방에 챙겨 넣었다.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닌, 따뜻함이 오가는 또 하나의 작은 물꼬가 되기를 소망한다. 등교하면 매점에 맛스타 사먹으러 같이 가자는 말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나의 조국도 다시금 바로 세워지고 안정을 찾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