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전에 <작별>을 먼저 읽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2. 19.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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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두 작품의 연관성에 대해 논하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전에 <작별>을 먼저 읽으면 좋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순서로 글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예상하셨겠지만, 당연히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순서를 지켜 읽지 않아도 괜찮아


물론 출판된 순서를 볼 때 <작별>이 <작별하지 않는다>에 앞서고, 뒤에 출판된 책에 앞선 책의 출판 사실을 언급하는 등 관련지어 순차적으로 읽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있을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독서라는 것이, 모든 독자가 저마다 다른 배경지식을 보유하고 각자 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글을 나름의 방식으로 탐험[혹은 '향유'라는 단어를 저는 쓰고 싶군요]해가는 활동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순서에는 정해진 순서나 절대적인 규칙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각 작품 자체가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는 하나의 완성품이기 때문에,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겠습니다.

 



순서대로 배우지 않아도 괜찮아

 
배움의 과정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영어의 기본 구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학생이라고 해서 매일같이 유치원생들이 읽을 법한 쉬운 자료 혹은 주구장창 파닉스을 설명하는 자료만 쥐어주는 것이 아니고, 학생의 인지발달 수준을 고려하여 과업을 제공해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음의 두 글을 보실까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같은 학생이 1년 동안 보인 성장의 모습입니다. 여러 주제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서 정리하여 영작하는 훈련 덕분에 학생은 에세이 작성 실력도, 성적도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지요. 학생의 현재 수준에 '적당한' 정도의 학습자료만 제공해 주었다면, 학생은 두 번째 사진 정도에 해당하는 에세이를 쓰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약간 이야기가 샌 것 같기도 하네요. 하여간, 독서의 순서처럼 우리의 배움의 과정도 순차적이지 않습니다.
 
 
 
 

다시, <작별하지 않는다>의 무게 속으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순서도 그렇습니다.  <작별>을 읽을 계획이 없으셔도 걱정 마십시오. 
 
한편, 역시나 놀랍게 전개되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나가는 중입니다.

소수의 사람들과만 연락을 이어오던 인선이 손가락이 잘려나간 일로 인해 유독 경하에게 연락을 하던 순간에도, 경하는 인선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 상태였고, (49)
막대한 치료비며 생활비를 떠올리며 자신이 '인선의 가족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버리기까지 했으며,(43) 
주인공 하는 인선의 잘려나간 손가락 봉합 부위가 끔찍한데도 전혀 끔찍하지 않다고 말하며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하는 등 (41)
 
경하는 사고를 당한 인선에 대해 속상해하면서도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알고보니 인선은 경하와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프로젝트--꿈 속에서 꿈을 꾸다가 깨어났는데 벌판에 눈이 내리고 검은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밀려들어오는 꿈을 영상에 담아보기로 했던, 정작 경하는 무기한으로 보류해버렸던--를 혼자서라도 준비하느라고 나무를 준비하다가 손을 잘린 것이었지요.
 
 
아. 한강 작가의 글은 너무 묵직하게 가슴을 눌러와서 한숨에 읽어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실은 일에 파묻혀 집중해서 읽을 시간도 길지 않았고요.
 
 
 

덧글, 못난 모습이어도 괜찮아

더 많이 읽었으면 좋았겠지만, 괜찮습니다. 느리지만 꾸준히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아침에 같이 말씀 읽고 기도하기로 했는데 학생이 오지 못했지만, 괜찮습니다. 내일이 있습니다.
순서도 잘 안 외워지고 발레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없었던 날이었지만, 
온통 실수 투성이에 나는 하염없이 부족해 보이기만 하는 날이 있어도,
글은 두서없고 엉망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좀 더 나은 날도 올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낼 용기와 소망을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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