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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독서일기 - 하지만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2. 2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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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 따뜻해.

하지만 새가 있어.

 
 
묘하게 대구를 이루는 문장이다. 각각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과 <작별하지 않는다>에 나온 문장이다. 첫 번째 문장은, 눈사람이 되어 버린 화자가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추운 강바람을 찾아 내려가지만, 존재의 필연적 소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장이다. 한편 두 번째 문장은, 새에게 물을 주어 살려달라는 인선의 부탁을 받고 인선의 제주 집을 찾아 나섰다가 폭설에 파묻힌 경하가 존재의 소멸에 대항하는 문장이다.
두 문장의 공통점은 눈과, 생명에의 의지이다. 두 문장의 차이점은 전자는 죽음으로 돌아서는 반면 후자는 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우리 삶의 모습이다. 끊임없이 죽음을 향하면서도, 생에의 의지를 확인한다. 두 문장의 상호 울림은 다음의 문장을 닮아있다.(이하의 인용문은 모두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발췌함)
 

모든 고통과 기쁨, 사무치는 슬픔과 사랑이 서로에게 섞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동시에 거대한 성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빛나고 있다. (137)

 
각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표지판이 하나의 이정표를, 부분의 합이 하나의 삶 덩어리라는 결정을 이룬다. 또한 그러다 보면 어떤 장면까지는 생명을 향하고 어떤 장면들은 죽음을 향하는지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온다.
 

창밖에서도 뇌성이 울리고 소나기가 쏟아졌기 떄문에, 어디까지 베트남 밀림의 비이고 어디부터 서울의 골목에 내리는 빗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107)

 
때로는 이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뇌성이 울리고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데 어우러져 귓전에서 떨쳐낼 수 없는 불협화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괴로워.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하지만...
 
 
무한한 ‘하지만’의 울림 속에, 우리의 생명에의 의지는 ‘오늘’이 언제인지 모르는 한 마리 ‘새’가 되기도 한다.
 
새는 어떻게 됐을까.
오늘 안에 물을 줘야 살릴 수 있다고 인선은 말했다.
그런데 새들에게 오늘은 언제까지인가. (130)
 
오늘이 ‘오늘’인 것 같다가도, ‘오늘’이 어제가 되어 버린다. 오늘이 ‘오늘’인 것 같다가도, 아주 먼 ‘내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게 ‘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인데, 정말 그러한 것인데, 어느 순간 ‘물’이 ‘오늘’을 앞당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하지만’을 되뇌기 시작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의 고백처럼, 생명수 그리스도로 인해 오늘이 ‘오늘’이 되어버릴[되어버린]지언정, 담대히 걸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너무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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