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한국 사회의 갈등을 봉합합시다 #2 - 사회정서학습의 중요성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1. 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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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내집단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경향성이 자칫 무비판적 옹호로 이어질 위험성을 지적하고, 이 과정에서 그릇된 의사결정으로 인한 비용 및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공적 마인드의 중요성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오늘 편 가르기와 혐오의 정치가 한국의 사회문화적 '정서'로 고착화되지 않도록 교육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공감의 부재와 혐오 정치

 
나의 편이므로 옳을 것이고, 나의 편이 아니므로 틀릴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는 종종 서로 다른 주체나 집단 사이의 합리적이고 융통성있는 대화를 저해합니다. 이는 비단 정치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가족 친지, 직장 동료, 각종 동호회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 및 사상, 및 다양한 견해를 접할 때 우리는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간주하고 배척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상대방의 입장과 시각에서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없을 때 더욱 쉽게 발생합니다. 다시 말해, 이방인, 경쟁자, 적수 등 나의 편이 아닌 누군가에 대해 공감할 의사(존중, 혹은 최소한의 예의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까요?)가 없는 경우 혐오가 시작되고 갈등이 심화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저 사람은 이러저러한 맥락에서 현 상황에 대해 그러한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로구나' 하고 공감적 이해를 시도하면, 설령 온전하고 완전한 이해에 이르거나 동일한 의견을 갖게 되지는 않을지라도, 혐오하는 마음만큼은 생기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의 입장차를 줄이고 아주 작은 타협점을 찾게 된다면, 이는 정말 좋은 시작점이 되겠네요.
 
 
 

대안 1. 가치 교육

 
첫 번째 대안은 혐오를 벗어나 존중의 문화 확립을 위한 가치 교육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로제의 '아파트' 영상 조회수가 하루만에 오천만 뷰를 돌파하며, 오징어게임의 흥행이 한국 과자의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뉴스를 볼 때, 혹은 올림픽 경기에서 한국 선수가 값진 메달을 획득할 때 우리에게는 좌파와 우파의 진영 논리도, 잘 살고 못 사는 경제 논리도, 더 배우고 덜 배운 학벌주의도 중요하지 않아집니다. 공동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정, 사랑, 신뢰, 존중과 같은 크고 아름다운 가치와 궁극의 지향점을 함께 바라보게 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요? 사소한 이해관계나 작은 이익이나 손해가 너무 크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도 있을까요? 점수와 숫자, 실적과 손익에 대한 계산으로 점철된 생각에서 좀 벗어나서 꽃향기와 새소리, 시와 미술과 음악을 향유하는 마음이, 동료와 함께 햇살을 즐기며 산책하는 기쁨이, 뒤에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중인 이웃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여유가, 타인에게 존중 받기를 희망하여 나도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가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얼마나 좋을까요.
이러한 이유로 저는 가정과 학교에서 가치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알고, 어려운 수학 문제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풀 수 있는 똑똑함은, 아름답고 선한 가치 위에 진정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자신만 살아남거나, 그러기 위해 심지 타인을 해치거나, 혹은 그러다가 필경 공멸의 길을 걷게 되는 '명석한' 사람을 길러내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대안 2. 정서 교육

 
두 번째 대안은 사회정서학습을 통한 정서 교육입니다. 정서의 중요성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정서 교육의 중요성
 

톰킨스, 에크먼, 이자드 등 여러 학자들이 연구하여 발전시킨 기본 정서 이론에 따르면 특정 정서를 촉발하는 자극이 우리 뇌의 감정 프로그램(정서 지시 시스템 등 학자마다 이를 지칭하는 용어나 정의에는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을 거쳐 기쁨, 놀람, 공포, 혐오, 부끄러움 등 선천적으로 설계된 정서 반응을 낸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서 반응을 사람의 얼굴 표정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고 하네요.
이를 반박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기본 정서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정의가 학자마다 다르고, 정서는 단순한 감정 반응이 아니라 감정의 상태가 우리의 인지적 의식 속에서 정교하게 구성되는 과정을 거쳤으며, 반응과 인지, 의도와 신념의 총체적 산물이기 때문에 관찰하거나 과학적 방법을 통해 측정하는 일이 어렵다고 합니다. 단순히 표정뿐만 아니라 음성 표현, 동공 크기 등 정서 표현의 다양한 요소는 측정의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이고요. 게다가 이러한 정서는 (어제 글에서 인용했듯) 오랜 기간의 정교화 과정을 거쳤으며 문화적 요소를 지니기 때문에 변화를 위해서는 다각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교육자로서 평생의 사명을 찾게 된 지점이기도 합니다. 바로, 교육을 통한 건강한 정서의 함양입니다.
 
 

사회정서학습(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SEL)
 

몇 년 전부터 사회정서학습이라는 개념이 교육계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개발된 사회정서학습은 긍정적 아동 발달과 정신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하는 교육과정 및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실은 사회정서학습은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강조해온 인성교육과 맞닿아있는 측면이 있지요. 쉽게 말하면, 인성교육이 방향성이라면 사회정서학습은 조금 더 구체적인 방법론이랄까요?
김윤경(2017)은 '사회정서학습(SEL)을 적용한 학교인성교육 정책방향 연구' 논문에서 사회정서학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효과적 인성교육을 위한 정책 방향을 제안합니다. 그는 독립적 사회정서학습 프로그램의 효과를 강조하는 한편 교과 연계형 프로그램을 통한 '일부분만 적용'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였는데요(물론 연구자는 도덕 교과교육의 일환으로서의 사회정서학습에 국한된 의미로 교과 연계형 사회정서학습을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학교 창체 시간 등을 활용한 교육(김윤경 님은 이를 '독립적 사회정서학습 프로그램'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은 피상적, 혹은 전시성 활동에 그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게다가 창체 수업은 평가와 연계되지 않기 때문에 깊이있는 배움으로 이어지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반면 교과 수업을 통한 사회정서학습은 평가라는 교육적 장치로 인해 학생 몰입을 유도하기 쉬운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창체 교육 등 비교과 활동을 포함한 모든 교육 활동이 관찰기록의 형태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입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학생들은 자연히 창체교육보다는 교과수업에 더 긴장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밖에 없지요. 다시 말해, 정기평가, 수행평가 등 비중 있는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는 교과 수업 내용에 사회정서교육이 통합될 때 깊이 있는 학습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모든 교육 활동을 평가 혹은 입시와 연관짓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가는 교육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헨리 뢰디거, 마크 맥대니얼, 피터 브라운은 공저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서 학습을 위한 수단으로 시험을 활용하라고 권장하며, 완전 학습, 혹은 학습 내용의 내면화가 이루어지도록 돕는 중요한 장치로서의 평가의 위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변별을 하고 순위를 매기는 활동으로 평가의 의미를 국한하지 않는다면,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교육정책 및 방법에 대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혐오를 넘어선 존중에 기반한 사회문화 조성을 위해 가정, 학교를 포함한 모든 교육현장에서는 가치 교육에 힘써야 하며, 교과 수업과 연계한 사회정서학습 등 이상적인 정서 교육 시행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인재 양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복되고 평안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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