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왜 물어볼까? - 공감과 논리적 사고력의 관계
다음은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진행되던 중 제가 제법 인상 깊게 관찰한 장면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영상의 05:42~ 06:10부분을 한 번 보시죠.
느낌을 왜 물어볼까
그렇게 격려를 해주니까 고맙던가요?
장순욱 변호사가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질문을 합니다.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후 전 대통령의 '덕분에 (계엄이) 빨리 해제돼서 고맙다'는 언급을 다른 증인은 뼈 있는 말로 받아들였는데, 증인은 별다른 뜻 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진술에 대한 추가 질문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시도했고, 자신의 시도가 상대방 덕분에 실패로 돌아갔다고 표현한 것은 반어적 표현이고, 따라서 본의는 격려가 아닌 질책에 가까웠겠지요. 하지만 이것을 질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진술은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였거나, 혹은 무언가 아직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감정은 상황과 맥락, 혹은 원인과 결과 등 논리를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왜 아쉬움을 느낄까
다음은 제가 전에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어떤 서류를 마감 기한보다 하루 일찍 제출하였는데, 어느 분께서 제가 서류를 일찍 제출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두 번에 걸쳐 표하시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감정 반응이었습니다. 주로 아쉬움은 마감 기한을 넘겨 업무 처리에 지장을 초래 하는 것과 같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표하는 것이고, 마감 기한에 비해 이르게 제출하여 업무의 진행을 도운 경우 감사를 표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아쉬움의 원인을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누구보다 서류를 빠르게 제출하겠다는 목표 의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타인의 서류 제출로 인해 자신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험을 하게 된 경우
2. 평소 매우 친밀한 사이여서 누가 먼저 서류를 제출할 것인지에 대한 내기가 사전에 있었는데 서류 제출로 인해 내기에서 패한 경우
3. 서류를 늦게 제출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다른 어떤 사정이 있는 경우
이와 같이 우리는 아주 작은 감정 반응에서 해당 상황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기분이 나아졌을까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학생들과 <Wonder>를 읽었는데요, Julian은 '네가 학교에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다면서 갑자기 똑똑해져서 심화 과학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니?'라며 August의 인지 능력을 의심하는 발언을 합니다. 이에 Charlotte이 August는 홈스쿨링을 받았다고 대변해 줍니다. 하지만 Julian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너희 엄마가 선생님이냐?'라고 질문을 하여 August의 어머니까지 비하하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Charlotte이 덧붙인 한 마디는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 엄마 선생님이니?
이 말을 들은 August의 감정을 추론해 보실까요? 더 불쾌하겠죠. 인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데다가 어머니의 자격까지 의심하는 말을 하는 Julian의 편견과 공격성이 문제인 상황이지, August의 어머니가 교사인지의 여부가 논점이 아닌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요약하는 활동에서 어떤 학생들이 다음과 같은 요약본을 완성하였습니다.
Jullian was rude to August, but Charlotte made him feel better and get out of the situation.
(Julian이 August에게 무례하게 굴었지만 Charlotte은 그의 기분이 나아지게 만들었고 상황에서 빠져나오도록 하였다.)
물론 Charlotte은 엄마가 선생님이 맞는지를 물어본 직후에 "나는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어."라고 말을 해주고 이것은 분명 격려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말로 전혀 위안이 되지 않을 만큼 (의도와 상관없이) Charlotte은 이미 August를 '두 번 죽이는' 말을 한 직후인걸요. 따라서 위의 학생들은 August의 감정과 입장에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고, 따라서 불완전한 분석을 내리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맥락을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서로의 감정과 상황 전반에 대한 조금 더 적실하고 면밀한 분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감정은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타인의 감정은 타인의 입장에 공감할 때 잘 읽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행동이나 말이 어떤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관찰하는 능력, 즉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은 교육적으로 볼 때 원만한 대인관계, 건전한 정서 함양 외에도 학생의 '논리적 사고력' 발달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끝으로, 제 감정 반응을 분석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지금 감사함을 느끼는 중입니다. 글을 한 편 썼다는 성취감에 더하여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제가 혹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하는 중이라면 그것으로 인해 기쁘고, 또 제가 살아 숨쉬고 있음에 그저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기쁘고 평안한 밤과 새날 맞이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