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를 21세기 교육에 적용한다면
1. 살아야 하는 이유 상기시키기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내가 '성취해야 할 목표'와 아직 '이루지 못한 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 정신적 긴장의 효용을 이야기한다. 쉬운 말로 하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생을 포기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빅터 프랭클의 경우 수용소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은, 수감된 직후 박탈당했던 원고를 다시 써서 출판해야만 한다는 의지였다고 한다. 이렇게 가치 있는 실행 목표를 상기시킴으로써 신경증 환자가 좌절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 빅터 프랭클이 주창한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이다.
나로 하여금 좌절의 순간을 극복하도록 만드는 요인(기독교 용어로 표현한다면 소명의식이 될 것이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학생들의 불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수업(이나 학생 생활지도)에 접근함에 있어 로고테라피를 적용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본다. 실체가 없고 뜬구름 잡기 식으로 흘러가지 않고 '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자신의 불안을 탐구하고 에세이를 작성하도록 하는 수업을 하고 있는데, 불안에 대한 탐구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생각해보도록 한 과정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 같다.
2. 돌덩어리 얹기
이렇게 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작업을 빅터 프랭클은 '정신적 긴장을 유도하는' 행위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요법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건축 기법을 비유로 든다. 낡은 아치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건축가는 아치에 작용하는 무게를 제거함으로써 부담이 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아치에 가해지는 하중을 늘림으로써 아치를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가 서로 더 밀착되어 힘이 긴밀하게 작용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일상생활의 예를 떠올려 본다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을 때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도 높은 운동을 한다거나, 일에 몰두하여 이리저리 마음이 이리저리 헤매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한편 정신적 긴장도가 무척 높은 학생들에게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고차원적 사고력을 요하는 과업을 제공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동안 자연스레 단순 반복, 단순 암기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방안이 여기에 해당할 수도 있을까, 상상해 본다. (영문 에세이라는 돌덩어리를 학생들에게 지어준 것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하는 중인 것 같다.)
3. 실존적 공허를 메우기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상태를 '실존적 공허'라고 하는데, 많은 경우 자살의 원인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로고테라피는 공허감을 '삶의 의미'로 채우게 만드는 작업이다.(이후 부분은 아직 읽기 전이다.) 한편 이러한 상실감이 20세기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현상이라는 빅터 프랭클의 설명에 제법 놀랐다. 기계화, 자동화, 대량화가 이러한 시대적 우울감을 양산했나 보다.
그나저나 실존적 공허감이 20세기에 '광범위한' 현상이었다면, 손가락만 움직이면 다 검색하고 소비하고 연락할 수 있는 21세기는 인류의 정신건강을 '압도하는' 요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놀이터에서 함께 놀 아이들이 없어 학원에 등록하고, 학업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놀이 선생님을 고용하는 현대 아이들의 공허감을 해결할 방안에는, 서책 독서가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간접 경험을 통해 필자와 함께 상상력을 동원하여 삶을 탐험하는 가운데 두뇌가 활성화되고, 심미적 감식안이 형성되며,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기르는 과정이 가능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