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독서 일기 - 고통이 지속되면 저는 글을 씁니다
일전에 학생이 지속적으로 내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학생에게 화가 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에게 가서 사과를 했습니다. 지도를 해야 하는데 화를 낸 것에 대해서요.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제는 어느 분께 저의 의견을 말씀드렸다가 사과드릴 일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상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은 고통이나 불편 하나하나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벼운'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괴테가 강조한 것처럼 고통과 쾌락은 서로 순서를 바꾸며 우리를 찾아옵니다. 가볍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작은 고통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 김종원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220면
그리고 이러한 저의 모습은 김종원 님이 같은 책에서 제시한, '나날이 수준을 높여가는' 사람들의 특징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1. 예민하지 않고 늘 섬세하다.
2. 화를 내지 않고 잘 설명해 준다.
3. 꼬아서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4. 과도한 부탁을 하지 않는다.
5. 자신에게 늘 좋은 말을 들려준다.
6. 매일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서 모은다.
- 같은 책 213면에서 발췌
저는 아무래도 품격 있는 말과 행위를 통해 수준이 높아지기는 글렀네요.
한편 서두에 기술한 작고 사소한 고통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면 어떨까요? 사람은 큰 고통을 느끼게 되겠지요. 이런 것을 미세차별(Microaggressions)라고 합니다. 어쩌면 오요안나 씨를, 김새론 씨를, 구하라 씨를, 설리 씨를 죽게 만든 것은 아주 사소한 어떤 말들의 지속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런 말들을 해온다면, 한 사람의 정신은 온전치 않은 상태가 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의 힘은 아주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를 잘 알지도 못하는 분께서 '그동안 마음에 쌓여있는 것 다 털어놔 봐요.'라고 말씀하셔서 굉장히 놀란 적이 있습니다. 서로 공감대가 아주 많이 형성되고, 또 제가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하기 힘든 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사실 개인적으로 참 힘든 시기를 보낸 직후였기에, 그와 같은 말이 예사롭게 들려오지 않더군요. 자연히 저는 '다른 어떤 경로로 내가 겪은 일에 대해 들어서 알고 계시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이러한 사소하지만 어색하고 이상한 일들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어떤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쩌면 의도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와 같이요.
제가 마음의 시름을 덜고, 온전한 정신 상태로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찾은 탈출구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일기로도 남기고, 소설도 써보고, 블로그 글도 쓰면서 저의 마음을 달래고 때로는 오늘처럼 울분을 토하기도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떠나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야 느껴집니다.
오늘은 공격을 받지 않았으면, 공격을 받더라도 웃어 넘길 수 있게 되었으면, 그리고 공격을 받더라도 감정적으로 응수하지 않고 따뜻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잠잠히 세상을 바라보고, 또 사색한 바를 글로 건강하게 풀어내게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봄 햇살이 너무 따사로워서 서로 미워하고 공격하면서 살아가기에 시절이 너무 아깝습니다.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목요일 보내셔요.
저도 그리스도 안에서 강건하게 오늘을 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