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77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독서일기 - 이상형과 탄식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우울한 소식뿐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4월이 가까운 날씨에 눈이 내리고, 미얀마에서는 강진이 발생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폭탄으로 국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삼천리 화려강산과 많은 목숨을 집어삼켰고,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고, 싱크홀이 생겨 사람이 매장되었으며, 편의점에서 젤리를 훔친 아이에 대해 지적하자 "아이를 도둑 취급한다고" 난동을 부린 아버지와 초등생을 살해한 교사와 미성년과 교제 사실을 부인한 연예인이 뉴스 화면을 메웁니다. 모든 질서와 균형이 철저하게 파괴된 듯 보이고, 가치가 실종된 시대에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우리 앞의 현실이 암담하기만 합니다..

도서 2025.03.30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독서 일기 #3 -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문화의 힘

다음의 오랜 농담을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1. 냉장고 문을 연다.2. 코끼리를 집어넣는다.3. 문을 닫는다. 러셀 로버츠의 을 읽다가 위의 농담과 같이 다소 허무한 웃음이 나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인간의 수많은 결점을 고치는 방법은, '나쁜 행동을 저지하고 착한 행동을 장려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지만 동시에 허탈해지는 해법입니다. 이론적[혹은 문자적]으로는 매우 타당한 말처럼 보이지만 실현이 대단히 난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러셀 로버츠는 규제와 법률을 통해 '나쁜 행동을 저지'하는 것보다는,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문화'를 통해 착한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논증합니다. 규제했으나 실효성 없는 정책의 ..

도서 2025.03.18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독서와 기쁨 회복 일기

저는 오늘 아주 슬펐습니다.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이런 자괴감에 자주 빠졌던 것 같습니다. 나약하고 연약한 한 인간에 대하여 자비하기는 커녕 참으로 잔인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스스로의 모습을 매일같이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잠들지 못하고 우는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랑 많은 엄마의 모습이 저는 아닐 때가 많았거든요. 어떻게해서든 저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싶어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에 저는 정말로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 것만 같았고, 그래서 더없이 울적했던 것 같습니다. 뒷부분을 읽으면서, 그나마 '나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에 대한 분석을 하게 되고는 마침내 침울함이 상당히 해소된 것 같습니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

도서 2025.03.17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독서를 통한 성찰 일기

글 쓰는 일에 대해, 스스로의 무지하고 준비되지 않은 모습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정 부분, 아니 상당 부분, 개학을 앞두고 염려가 큰 상태여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제가 읽고 생각하고 '알고 있다'고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하찮고 얄팍할 뿐인가를, 작가들과 또 여러 블로거 분들의 기라성 같은 글을 보면서 더욱 느낍니다. 최근에는 글을 한 편 써보려고 도전 중이기에 더욱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며, 절로 겸손해지는 중입니다. (내일부터 당장 학생들 앞에 서서 '가르쳐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실로 난감한 일입니다.) 그런 와중에 저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 박사가 애덤 스미스의 을 읽고 ..

도서 2025.03.03

에밀리 A. 캐스파 <명령에 따랐을 뿐!?> 독서 일기 #3 - '그들'이라는 용어 금지 캠페인을 벌여 볼까요

집단 학살 등 잔학행위가 일어나는 이유를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대안 제시를 시도하는 책 을 80여쪽 남겨두고 다 읽었습니다. 어떤 책은 끝까지 다 읽어내려면 제법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한데 이 책은 페이지가 어느새 이렇게 많이 넘어갔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다양한 연구 결과가 수록되어 흥미롭기도 하고, 영감을 많이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제 최근 관심사와 무척 관련성이 높아 더욱 잘 읽히는 듯합니다.  오늘은 거리감이 불러올 수 있는 단절감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써볼까 합니다.   1. 물리적 거리와 단절감 우리는 대면한 상태에서 타인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실험 결과 다른 방에 있는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일보다 같은 방에 있는 사람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일을 실험 대상자..

도서 2025.01.25

에밀리 A. 캐스파 <명령에 따랐을 뿐!?> 독서 일기 - 명령을 따르는 동안 뇌에서 벌어지는 일

명령에 복종하는 동안 우리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위의 질문은 에밀리 A. 캐스파라는 심리학자가 연구를 통해 이라는 책을 집필하는 동기가 된 질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세상에 집단 학살과 같은 끔찍한 행위가 벌어지는 이유를 신경과학의 입장에서 밝히고, 이에 대한 예방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캐스파 박사의 연구 목적입니다. 그리고 극악무도한 일을 행하고도 '그냥 시키는 대로 명령에 따랐을 뿐이에요.'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폭력의 가해자들의 뇌를 연구하지요. 명령의 힘 결론적으로, 우리가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는(혹은 '복종'하는) 동안, 책임감과 주체의식을 관할하는 뇌의 영역의 활동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심지어 잔혹하게 살해하는) 행..

도서 2025.01.23

<작별하지 않는다> 독서일기 - 하지만

하지만 너무 따뜻해.하지만 새가 있어. 묘하게 대구를 이루는 문장이다. 각각 한강 작가의 소설 과 에 나온 문장이다. 첫 번째 문장은, 눈사람이 되어 버린 화자가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추운 강바람을 찾아 내려가지만, 존재의 필연적 소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장이다. 한편 두 번째 문장은, 새에게 물을 주어 살려달라는 인선의 부탁을 받고 인선의 제주 집을 찾아 나섰다가 폭설에 파묻힌 경하가 존재의 소멸에 대항하는 문장이다.두 문장의 공통점은 눈과, 생명에의 의지이다. 두 문장의 차이점은 전자는 죽음으로 돌아서는 반면 후자는 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우리 삶의 모습이다. 끊임없이 죽음을 향하면서도, 생에의 의지를 확인한다. 두 문장의 상호 울림은 다음의 문장을 닮아있다.(이하의 인용문은 모두 ..

도서 2024.12.24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섬뜩한 눈이 내린다

한강 작가의 에서 내리는 눈은 소리 없이 사각사각 내려와 소복소복 싸이며 강아지와 어린이들이 뛰놀게 만드는 눈이 아닙니다. 다음은 '폭설' 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눈에 대한 묘사들입니다. (59) 흰 새들의 길고 찬란한 띠(60) 눈이란 원래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지상에서부터 끝없이 생겨나 허공으로 빨려 올라가는(63) 잿빛 하늘과 아스팔트 사이의 허공을 촘촘히 꿰매는 무수한 흰 실들(67) 수천수만의 새떼같은 눈송이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나 바다 위를 쓸려 다니다 빛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다.(71) 숨막히는 밀도의 저 눈보라(71) 어디까지 구름이고 안개이고 눈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저 일렁이는 회백색 덩어리(74) 허공 위로 고운 소금 가루 같은 눈발이 반짝였다.(87) 버스 앞유리의 와이퍼가 ..

도서 2024.12.20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전에 <작별>을 먼저 읽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며칠 전 두 작품의 연관성에 대해 논하며 를 읽기 전에 을 먼저 읽으면 좋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순서로 글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예상하셨겠지만, 당연히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순서를 지켜 읽지 않아도 괜찮아물론 출판된 순서를 볼 때 이 에 앞서고, 뒤에 출판된 책에 앞선 책의 출판 사실을 언급하는 등 관련지어 순차적으로 읽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있을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독서라는 것이, 모든 독자가 저마다 다른 배경지식을 보유하고 각자 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글을 나름의 방식으로 탐험[혹은 '향유'라는 단어를 저는 쓰고 싶군요]해가는 활동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순서에는 정해진 순서나 절대적인 규칙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각 작품 자체가 그 자체..

도서 2024.12.19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전에 <작별>을 읽어야 하는 이유

김영하 작가의 , 마거릿 랜클의 , 시미즈 하루키의 등 작별을 소재로 하는 책들은 참 많습니다. 사랑이 영원불변의 소재여서 그런가 봅니다. 또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저마다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는 사건이어서 더욱 이야깃거리가 많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한강 작가는 '작별'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두 글의 제목에 채택하였습니다. 하나는 단편 소설의 제목이 되었고, 하나는 상반되는 문구가 되어 장편 소설의 제목이 되었네요. 저의 예상과 달리 우연이 아니었습니다.학교 선생님께 를 먼저 읽을 수 있도록 배려를 받고, 비슷한 시기에 친한 옛 동료분께 을 추천 받은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바쁜 시기라는 핑계로 짧은 글을 먼저 펼쳐든 것도요. 한강 작가의..

도서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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