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는 <작별>에서 갑자기 눈사람이 되어버린 주인공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경찰이 무얼 할 수 있겠어. 의사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리고 한강 작가는 2022년 AxT 잡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런 것들이 무엇을 할 수 없는 곳에 문학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존재 가치가 의심받는 순간에, 혹은 우리의 영혼이 병들어버린 순간에 문학을 통해 소설가가 어떤 치유자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설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달래고, 위로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한병철을 포함한 여러 학자들이 설파합니다. 이쯤 되면 소설가의 사명은 시대의 아픔과 결핍에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까요?
그런 관점에서 저는 김영하 씨가 굉장한 사명자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설 <작별인사>에는 그의 고민과 통찰이 가득 들어 있거든요. 소설 속에 나타난, 작가의 시대를 향한 문제 의식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테면 김영하 작가의 ‘탐구 질문’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일단 전체의 주제와 관련하여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은 “기계나 클론로 신체의 일부를 계속해서 교체해나간다면 어디까지가 인간(혹은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일까? 인간은 휴머노이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마땅한가? 인공지능에 과도하게 의존하다가 인간이 멸망하는 것은 아닐까?” 등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소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직접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분만의 답을 찾아 보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지요?
이제부터는 제가 발견한 다른 탐구 질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김영하 작가는 글을 쓸 때 ‘고통의 쓸모’에 대한 깊고도 무거운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발췌문을 보시죠.
“임계점을 넘어가는 극한의 고통은 나중에 그 어떤 기쁨이 주어지더라도 장부상의 숫자처럼 간단히 상계되지 않습니다.” - <작별인사> 149면에서 발췌
“인간들은 늘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고통이 없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152)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 그게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하려는 것입니다.” (153)
소설 속 등장인물인 달마와 선이, 그리고 주인공 철이의 대화를 따라가며, 우리는 고통을 줄이려는 시도가 가능하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는지 상상하게 됩니다. 김영하 작가는 아마도 우리로 하여금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고민해 보기를 바랐던 것 같지요? 그러면서 ‘고통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으면 좋겠다’, 혹은 ‘그래도 고통은 의미 있는 것이야’와 같은 저마다의 답변에 도달하게 되겠잖아요.
제가 발견한 김영하 작가의 두 번째 탐구 질문은 ”이야기를 통한 마음의 치유가 가능할까?”입니다.
“현실을 망각할 정신적 마약, 즉 이야기는 무한히 제공되었다.” (45)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난 인간들은,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이야기라는 매우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발명했습니다.” (161-162)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정신적 장치입니다.” (164)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겨내게 하는 마약과 같은 존재로서, 그리고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도록 만드는 장치로서의 이야기의 위상을 전달하며 작가는 지속적으로 이야기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제 추론으로는 김영하 작가는 “내가 이 시대에 소설을 써서 무얼 하나”하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가 어떤 결론에 도달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고통 가득한 삶의 의미를 찾으며 마음이 치유될 수 있어요.”라고 책을 통해 설득하는 중이랄까요.
세 번째 질문은 ‘인간은 왜 이토록 연약한 것일까?”입니다.
“인간들이 참 무정한 게, 자기들은 어둡고 우울하면서 휴머노이드는 밝고 명랑하기를 바라거든요.” (184)
“잠이며, 꿈이며, 온갖 번거로운 인간다움에 대하여 나는 화가 났다.” (207)
“인간이란 얼마나 취약하고 불안정한 존재인가.” (260)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276)
“나는 선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 아닌가.” (283)
인간의 이율배반적인고 나약한 모습이 휴머노이드를 고르는 장면에서, 그리고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모든 순간에 드러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선이의 어리석음을 통해 ‘인간다움’의 미학을 발견하기도 하네요. 각 장면에서 김영하 작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에 대해 사고하도록 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인간을 과연 이기적이라고 단죄할 수 있을까?” 혹은 “인간의 행동에 이기적이지 않은 것들이 존재할까?”입니다.
“그게(목적을 가지고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게) 만약 잘못이라면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인간의 부모도 모두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나중에 내가 늙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후략)” (186)
자식을 낳는 것조차 어떤 이기심이 발동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며 저는 참으로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어떠신가요? 전체 주제 말고도 정말 풍성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통해 김영하 작가는 글을 쓴 것 같지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답을 찾아가야 할 그런 질문들 말입니다. 그리고 작가를 따라 함께 고민하다 보면, 우리들의 눈빛은 조금 더 깊이 있고 따뜻해지겠지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참에 소설을 한 권 더 꺼내보려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소설가 분들이 존경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평안하고 기쁜 저녁과 밤, 그리고 새날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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