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막을 친다는 것은 무언가를 숨기거나 어떤 대상으로부터 회피하는 행위입니다. 잘못을 숨기고 싶어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할 수도 있고, 초조함을 숨기고 싶어서 애써 웃어보일 수도 있겠지요. 이반 일리치는 다가오는 죽음을 외면하고 싶어 가림막을 찾습니다. 일에 몰두하기도 해보고, 카드 놀이에 열중해보기도 하고,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생각을 의식적으로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어떤 가림막도 소용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성공적인 가림막이 장면 말미에 등장합니다. 바로 (자신의 죽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따라서 죽음을 연상시키는 탁자를 옮기는 것을 반대하는 딸과 아내에 대항하여 싸울 때 느낀) ‘분노’였습니다. 화를 내느라 옆구리의 통증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