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6

<모비 딕>과 인간의 윤곽 그리기, 그리고 상호 신뢰

p.434~435길거리 기름집 간판의 고래 그림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대체로 그 고래들은 곱사등이 리처드 3세 고래라고 할 수 있는데, 성질이 매우 사나우며 선원 서너 명으로 속을 채운 파이, 즉 전원이 승선한 보트를 아침으로 먹고, 피와 푸른 물감이 뒤섞인 바다에서 몸부림치는 기형의 동물이다.하지만 고래의 묘사에서 범하는 이런 무수한 오류도 따지고 보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생각해 보라! 과학 서적에 실린 그림 대부분은 해안에 떠밀려 온 고래를 보고 그린 것인데, 그건 용골이 부서진 난파선을 그려 놓고 웅장한 선체와 온전한 활대를 자랑하는 기품 있는 짐승을 제대로 묘사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코끼리는 전신을 드러내며 서 있지만 살아 있는 고래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닷속에서만 볼 수..

교육 2024.07.10

<모비딕>과 익살과 농담의 역설

p. 345~346 육지 사람들은 고래가 엄청난 힘을 지닌 엄청난 동물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그 힘과 크기가 얼마나 엄청난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려 들면 사람들은 참 익살스럽게 얘기를 잘한다며 칭찬했다. 영혼을 걸고 얘기하지만, 내 이야기는 모세가 기록한 이집트 재앙의 역사만큼이나 익살과 거리가 멀었다. 웃기려는 시도 없이 웃음을 짓게 하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생각에 몰두한 사람이 그러하다. 크게 관심이 없었거나, 잘 모르던 주제나 현상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한 결과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이를 볼 때, 미소를 짓게 된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또 사랑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마음을 쏟아 이야기하는 아이가, 또한 내일 말하기 수행평가에 몰두하..

도서 2024.06.24

모비딕에서 발렌시아가까지 - 천박성에 대한 고찰

p.356 인간은 강렬한 감정에 휩싸였을 땐 하찮은 고민을 경멸하지만, 그 순간은 금세 지나간다. 인간이라는 피조물의 본질적인 천성은 바로 천박함이라고, 에이해브는 생각했다. 흰 고래가 야만적인 선원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고 야만성을 자극해서 의협심까지 넉넉하게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오로지 좋아서 모비딕을 추격한다 하더라도, 좀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욕을 만족시켜 줄 음식도 먹어야 했다. 옛날 숭고하고 기사도적이던 십자군들조차, 성전을 벌이기 위해 3천 킬로미터가 넘는 산천을 가로지르는 동안 강도질을 벌이고 남의 주머니를 털며 이런저런 부수입을 챙겼다. 그들을 궁극적이고 이상적인 목표에만 엄격하게 묶어 놓았다면, 바로 그 궁극적이고 이상적인 목표가 지긋지긋해져서 등을 돌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도서 2024.06.23

<모비딕>을 통해 살펴보는 힘의 역학관계

1권 33장부터 36장에서 멜빌의 시선은 작살잡이장, 선실의 식탁, 돛대 꼭대기, 뒤쪽 갑판 등 배의 다양한 장소 및 각 장소에 있는 인생들에 머문다. 에이해브 선장이 있는 뒤쪽 갑판에서부터는 저물녘, 황혼, 첫 번째 야간 당번, 한밤중과 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 사회를 고찰한다.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강자는 낮의 시간을 점유하고 분노를 숨김없이 표현하며, 약자는 밤의 시간으로 내몰리고 웃는 얼굴을 한다는 것이다. 1. 강자1.1. 낮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강자 아침 식사를 마친 이후부터 해가 저물기까지, 에이해브는 끊임없이 거닐며, 자신의 생각에 몰두한다. p.273 그런 데다가 밭도랑처럼 주름진 이마를 눈여겨봤다면 거기에서는 더 이상한 발자국, 쉼 없이 거니는 상념의 발자국..

도서 2024.06.13

<논증의 기술>과 <모비딕>과 함께 농담으로 마무리하는 하루

또 가슴이 뛴다. 설레어서라기보다 무리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지만 과연 무슨 일을 덜어낼 수 있었을까, 싶다. 숙제로 앤서니 웨스턴의 을 몇 자 읽었는데, 웃기는 농담도 논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여겨졌다. p.25 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지구에 살기만 하면 해마다 한 번씩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무임승차권을 얻게 된다. 이런 관조적이고 해학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무게가 다소 가벼워질 수 있겠지. 나만의 농담에 기반한 논증(...이라고 부르기 거창하다면 그저 이를 패러디한 나만의 농담)을 시도해 보자. 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천국 소망을 더욱 품을 수 있게 된다.지구에 사는 것이 고된 일일 수도 있지만, 하..

도서 2024.06.03

<인공지능, 마음을 묻다> 독서일기 #6 - 가치와 존엄

오늘은 허먼 멜빌의 의 한 장면에서 시작해 보도록 하죠. 네 말도 옳다만 나는 이 작살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목숨이 걸린 수많은 싸움에서 제 몫을 다하여 고래의 심장을 깊이 찔렀던 믿음직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포경선마다 작살이 다 있는데 거추장스러운 작살을 늘 가지고 다니느냐는 이스마엘의 질문에 대한 퀴퀘그의 답변입니다. 대량생산 시대에 똑같이 생산된 수많은 토끼 인형이 존재하지만, 어릴적부터 들고 다녀 아무리 빨아도 꼬질꼬질 떼가 탄 토끼 인형은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퀴퀘그가 마치 몸의 일부와 같이 애지중지하는 작살은 다른 어떤 작살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지요. 어제 읽은 부분에 따르면 사회문화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특정 대상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고유의 모습을..

도서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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