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었습니다.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작품이지요. 저는 사실 폴 고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고흐가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며 정성스레 꾸민 방에도 찾아오지 않아 실망감을 주었으며,

마침내 찾아와 고흐와 함께 살 때 술에 취한 광인의 모습으로 고흐의 초상을 그려 고흐에게 모멸감을 주었고,

또 고흐와 크게 다투어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도록 만든 장본인이잖아요.

심지어 폴 고갱은 타히티에 거주하는 동안 그 지역의 어린 소녀를 포함한 여인들과 무분별한 성행위를 하여 매독을 널리 퍼뜨리지 않았던가요! 그의 삶 어느 한 구석을 본들 폴 고갱을 좋아할 여지가 없게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또 그의 작품과 인생에 대한 글을 찾아보며 저는 폴 고갱이 조금 안쓰럽게 여겨지더군요.
주식 중개인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가정을 뒤로한 채 전업 화가의 삶을 살기로 했을 때,
화가가 되었으나 막상 그림도 잘 팔리지 않아 돈이 없을 때,
사람들이 자신의 열정과 예술 세계를 잘 알아주지 않을 때, ...
많은 순간 그 자신도 얼마나 막막하고 암담했을까요.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자책했을지도요.

그리고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기도 했겠지요.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읊조리면서요.

그러면서도 생의 끝에, 아름다움을 찾아 방랑길을 떠났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는 다시 돌아가도 같은 길을 선택했을 거야, 라고 하면서 눈을 감지 않았을는지요?
고갱의 삶을 생각하며 저도 생각이 많아지네요. 윤동주 시인님의 <자화상>도 떠오르고요.
윤동주 님의 시를 감상하며 글을 맺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연시 보내시기 바랍니다.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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