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그림이죠?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먼저 감상하시겠습니다.

잘 차려입은 젊은 남녀로 이루어진 인파가 야외 무도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 친구들을 서로 소개시켜 주는 사람, 이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사람 등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네요. 모두가 설레고 들뜬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반 고흐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도 감상해 보시죠.

시끌벅적한 연회장의 분위기는 전혀 읽을 수 없죠. 구름도 풍차도 사람들의 옷과 발걸음도, 그리고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물랭 드 라 갈레트입니다.

모리스 위트릴로의 시선에 비친 물랭 드 라 갈레트도 감상하시죠. 고흐의 그림에서 본 느낌과 비슷하게 황량하고 음습한 골목길의 풍경입니다. 여기저기 시선을 두며 즐기고 싶다기 보다 빨리 통과해서 지나가고 싶은 거리처럼 느껴지네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다음 그림도 감상하시죠. 앙리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서'입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서처럼 사람들이 춤을 추고는 있는데, 대체로 표정이 없거나 더러는 슬퍼 보입니다. 무도회장은 술냄새와 담배냄새, 그리고 곰팡내가 뒤섞여있을 것만 같습니다. 짙은 화장을 하고 검은 옷을 입은 채 앉아 있는 여인들은 한숨을 내뱉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 실은 당시 파리는 경제적 곤궁, 정치적 혼란, 고통의 흔적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보불 전쟁의 패배에 이어 파리 코뮌 공방전으로 인해 무정부 상태에 빠지는 등 파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거든요. 젊은이들의 앞날은 불투명했고, 젊은 여성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바느질을 하거나 매춘을 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우리 이쯤에서 르누아르의 그림을 다시 한번 감상하실까요?

르누아르는 그러한 현실을 몰라서 이렇게 사람들을 해맑은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실은 르누아르 본인도 심한 빈곤을 겪었다고 합니다. 물감 값을 후원해주던 프레데릭 바지유마저 1870년 보불 전쟁에서 전사해서, 이 그림을 그리던 시기에 르누아르는 그 누구보다 암담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르누아르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그림을 감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르누아르의 명언을 끝으로 오늘의 명화 감상을 마치려 합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계속된다.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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