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독일인의 사랑> 독서 일기 - 사랑에 대한 단상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1. 3.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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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앙인으로서 나의 신앙이 위기 상황에 처했음을 느끼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가장 빈번하게 이러한 위기를 순간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흔히 사랑하면 떠올리는 '가슴 떨리고 설레며 갈망하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가족을 바라볼 때, 학생이나 동료나 다른 교우들을 바라볼 때, 한 영혼을 바라볼 때 안타까이 여기며 그 영혼을 기뻐하는 마음이 내가 추구하는 사랑의 마음이요, 최근에 내 안에서 찾기가 도통 어렵다고 느껴지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각종 폭풍우가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통에 사랑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겹게 느껴지기도 한 사정이 나름대로 있기는 하나, 이것이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으므로 핑계할 수 없다.
 
 
 
오랜만에 영혼을 기뻐하는 마음이 조금 회복되었다고 느낀 경험이 있었는데, 지난 주 교회에서 노숙인 및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웃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지켜보면서였다. 그래도 교회에 소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참으로 기뻤다. 또한 <독일인의 사랑>을 읽으며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사유가 참 아름답게 여겨졌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후작 부인에 대해 지녔던 동경을 떠올리고, 이웃의 결핍에 대해 지녔던 연민의 마음을 인식하면서 사랑의 의미에 대해 탐색한다. 그리고 마리아라는 소녀와의 고결하고 지순한 사랑을 통해 사랑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화자가 (얼마 읽지 않긴 했지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화자와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나타난 <아가서>가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판형의 표지는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태고적부터 있어 온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요, 어떤 추를 사용해도 측량해 낼 수 없는 깊은 샘물,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분수이다.
  사랑을 아는 이는, 사랑에는 척도가 없는 것, 크다거나 작다거나 하는 비교가 있을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은 오로지 온 마음 온 영혼,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하여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 막스 베버 <독일인의 사랑> 17면

 
 
 
이런 숭고한 사랑에 대해 논하면 영락없이 '내가 얼마나 사랑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그나마 과거에는 그저 사람들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순간이 지금에 비해 많았던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나를 더욱 골몰하게 만드는 생각이다. 단순히 인생의 때가 묻었다거나 성령 충만하지 않다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성숙의 과정인 것 같긴 하다. 모든 이의 모든 시간을 경유한 성숙의 과정 끝에,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사랑의 시선이 우리 안에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교역자와 성도가, 성도와 성도가, 형제와 자매가, 이웃과 이웃이 주 앞에 서로의 영혼을 기뻐하며 긍휼히 여기는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기도 하는 기이한 일들과 또 나의 내면에 대해, 또한 못지않게 너무도 가벼워지고 심히 일그러진 ‘사랑’의 모습들에 대해 깊이 근심한다.
 


(요한1서 4장 / 개역개정)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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