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중고서점에서 책 (제목을 훑으며) 쇼핑을 하다가 <똥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몇 장 넘겨 보다가 구입했다.
(나도 경험해 본 일이 없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똥이 비료로 재탄생하지 않는다. 변기 레버를 누르면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배설물은 눈 앞에서 사라진다. 이것은 마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배설물이 거름이 되어 다시 생명으로 이어지는 자원 순환의 연결 과정이, 잘 발달된 하수처리 시스템으로 인해 단절되고, 하수처리와 화학비료 생산이라는 별개의 영역이 되었다. 0에서 1로 넘어가는 과정이 선형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0의 영역과 1의 영역으로 나뉜 것이다.
단절의 시대이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잘못 썼다가 삭제하면 마치 어떤 메시지도 보낸 일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말을 했다가 철회하거나 '미안,' 하고 사과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세할 수 있으며, 눈앞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나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냥 나의 스케줄과 당면과제에 매몰되어 살다 보면 아들의 이민을 앞둔 부모의 한숨과 지금도 하수처리 과정 중에 있을 나의 똥은 없는 일이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또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위에서 돌아가는 모든 일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에서 우리는 단 1분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연결에 대한 감각을, 연결되어 있기에 마땅히 지녀야 할 책임감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과거 나의 말과 나의 행위가 지금도 누군가에게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아침에 도로며 거리가 깨끗한 것은 마법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
언제 어디선가 나의 수업에, 일상의 결정과 판단에 담길 것이기에, 훨훨 날아가는 것만 같은 지식의 편린들도 열심히 그러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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