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양이의 주이상스
어제 산책을 하다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고양이의 왼쪽 눈에 무언가 붙어 흔들거리길래 보니 살점이었다.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가여운 고양이는 계속해서 앞발로 눈을 비볐다. 얼마나 아플까, 그려면서도 계속 비벼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고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도 상처에 간신히 앉은 딱지를 가만 두지 못하고 떼어내기도 하고, 입 속 염증을 자꾸만 혀로 건드리는 등 고통 자체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똥의 인문학>에서 저자가 언급한, 라캉의 향락(주이상스 jouissance) 개념이 이런 것인가 싶다. 또한 계속 뛰다 보면 어느 순간 근육의 피로가 사라지고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러너스 하이도 비슷한 류의 작용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쪼록 인간은, 생명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고통을 즐기는 존재라니! 고통을 즐길 수 없으면 생명이 이어질 수 없을까봐, 고통 자체인 인생을 견뎌낼 수 있도록 설계한, 창조주의 우리를 향한 배려일까?
#2. 나와 타인의 고통 사이 어딘가의 인류애
어차피 해로운 분비물을 나눌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체내에서 합성한 찌꺼기를 세상에 배출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인간은 타인을 자신의 은밀하고 적대적인 향락의 대상으로 대하기보다는 서로에게 공통의 책임을 지고 지우는 새로운 관계를 발명해야 한다.
- <똥의 인문학> 4장 '더러운 똥, 즐거운 똥, 이상한 똥'에서 발췌
한편 같은 책 5장 '똥-돈-삶'에서는 혐오 정치의 위험성과 인류애의 어려움과 중요성이 소개되어 있다. 항문 쾌락(동성애)의 억압과 혐오 정치를 경계하는 대안으로서의 인류애를 제시하는 맥락으로 파악된다.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동성애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첫 번째는, 동성애자이건 이성애자이건 모두가 하나님 앞에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고, 살인을 하는 행위이건 자신의 우월함을 짐짓 뽐내는 행위이건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모두 '죄의 영역에 속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혐오의 시선을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진정한 인류애라고 믿으며, 인류애의 필요성에 적극 동의한다.) 인류애를 온전히 실현하기 힘든 이유는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인 것 같다.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과정은 자신을 내주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과정이다. 즉, 타인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가 어렵기에,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마도)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것처럼 나를 포기하고 내주는 과정(나의 고통)과 거절하고 경계를 세우는 일(타인의 고통) 사이의 끊임없는 진자 운동이 아닌가 싶다.
#3. 쾌락을 위한 고통
<똥의 인문학>에서는 쾌변과 같은 '더 큰 쾌락'을 위해 똥을 참는 예시를 들며, 유보된 쾌락을 이야기한다. 즉 더 큰 만족감을 위해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대학 가면 미팅을 할 공상을 하며 독서실에서의 시간을 참는다거나, 멋진 비키니 자태를 상상하며 플랭크 1분을 하고도 30초를 더 버틴다거나, 글쓰기 실력과 사고력이 향상되어 있을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오블완 챌린지에 도전한다거나, ... 우리는 끊임없이 고통을 감내한다. 마침내 목표를 이루면 다행이지만, 그 와중에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상실하여 미궁에 빠져드는 순간들도, 아니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보상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목표를 이루고도 내가 상상했던만큼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만족감의 지속이 너무 짧은 순간도 있다. 그 허망함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인내심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 자체의 가치에 대해 잘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아고. 오늘은 그야말로 개똥철학 나부랭이다.
발레학원 작품반 수업까지 수강하고 와서 씻으면 11시 35분이니, 오블완 챌린지에 성공하려면 저녁먹고 피아노 연습한 이후인 8시부터 9시 사이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한다. 개똥철학 하기도 빡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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