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24년 11월의 마지막 산책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1. 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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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을 다시 읽는 중인데 아직 생각이 잘 정리되지는 않고 아직 생각을 잉태하는 중이다. 식사 후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산책길에 나섰다. 
 
천천히 반환점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데, 이상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마치 나무 줄기의 가운데 부분을 다 파낸 것처럼 속이 텅 빈 U자 모양으로 생긴 것이었다. 나무가 세상 시름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다 못해 비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생명체에게 길을 내주었던 것일까. 속이 비어있는데도 어찌나 강인하게 보이던지.
 
 
 

 
 
 
짠하기도, 감탄스럽기도 하다 생각하며 나무를 지나치는데 어라, 다른 나무도 속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무 줄기가 동그랗고 비교적 매끈하게 쭉 뻗어있는 나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죄다 이렇게 인고의 흔적, 혹은 성장통의 흔적을 안고 있었다.
 
 
 

 
 
 
두 나무가 한 몸을 이룬 연리지처럼 보이는 나무도 있었고,
 
 
 

 
 
 
뜯어내기 전 나무젓가락처럼 두 줄기가 딱 붙어있는 듯한, 하지만 한 그루인 나무도 있었다. 수없이 다닌 산책로인데, 주로 하늘과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쳐다보느라 줄기의 모양은 오늘에야 처음으로 유심히 살핀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어라, 너구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사람으로 인해 위협을 당하거나 놀란 일이 없었던지, 도망 가지도 않고 가만히 서서 나와 눈을 한참 동안 맞추었다.
 
 
 

 
 
 
그러다가 옆쪽 나무 사이로 이동하더니 그 곳에서도 한참을 나를 쳐다보다가, 행인을 쳐다보다가, 하천을 쳐다보다가, 또 나를 쳐다보다가 했다. 혼자 두고 오면 외로울 것 같아 발걸음이 안 떨어졌는데, 뒤에서 걸어온 한 커플이 나를 지나쳐 가다가 너구리를 발견하고는 너구리를 한 번 쳐다보고, 옆에 미동도 않고 서 있던 나를 한 번 쳐다보고 하기에 좀 민망해져서 슬그머니 걸음을 뗐다. 너구리야, 추운 밤 잘 나렴, 먹잇감도 많이 찾길 바라.
 
 
 

 
 
 
커플을 지나쳐 종종 걸음으로 가는데, 하천 쪽 데크에 있는 눈탑을 발견하고 또 멈추었다.
 
 
 

 
 
 
옆에 있던 눈뭉치를 주워 눈탑을 한 층 쌓아 올리고 사진도 찍는 나를, 아까 그 커플이 지나쳐 가며 또 한 번 쳐다보았다. 혼자 놀고 있는 아지매가 영 신기했는가 보다.
 
 
 

 
 
 
주변에 작은 나무들이 빙 둘러 자란 것인지, 이나면 밑둥에서 어떤 연유로 가지들이 솟아난 것인지, 이 나무는 면류관을 두른(?) 것만 같았다. 꽃과 나뭇잎, 구름, 나뭇가지 말고도 이렇게 볼 거리가 많은 장소일 줄이야.
 
 
 

 
 
 
어머나, 이 나무는 마치 바지에 실수를 한 것만 같다.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지 못했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해 놓고는 장식품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기념으로 받은 곰돌이들을 매달며, 소녀들의 학업과 복된 삶을 위해 기도했다. 미루어 두었던 답장도 썼다.
 
 
 

 
 
 
아줌마도 교회에 다녀. 네 그림이 참 멋지다. 아줌마의 딸들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너는 어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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