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한국 사회의 갈등을 봉합합시다 - 공적 마인드와 민주적 소통 구조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1. 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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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양쪽 진영으로 분열이 된 우리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하게 되었기에, 이를 글로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조지프 르두는 그의 저서 <불안>에서 실반 톰킨스의 기본 정서 이론을 언급합니다. 톰킨스의 정리에 따르면 정서는 놀람, 기쁨, 분노, 공포, 혐오, 부끄러움, 번민 등의 일차적 정서와 죄책감, 당혹감, 공감 등의 이차적 정서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또한 이차적 정서는 문화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문화, 그리고 현재가 쌓여 이루어질 미래의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에 대한 근심이 깊어졌습니다.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생긴 저의 일차적 정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닌 자를 싸잡아 비난하고, 어떠한 합리적 소통과 이해도 허락하지 않는 대결 구도가 대한민국 고유의 문화로 확고히 자리잡아 영영히 계승되면 어떡하나, 하고요.
 
현대판 붕당정치, 편가르기와 혐오의 문제의 뿌리를 나름의 시선으로 진단해 본 후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차적 정서의 ‘공감’으로의 변혁에 대한 교육자로서 저의 의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적 마인드에 초점을 맞추어 편가르기의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공적 마인드의 부재와 편가르기

 
우리는 생존본능으로 인해 주위 환경의 안전성을 판단하여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어 나와 나의 내집단의 안녕에 위협이 되는 인물인지, 도움이 되는 인물 혹은 집단인지를 끊임없이 판단합니다. 이렇게 외집단을 배척하는 가운데 내부의 결집력이 강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우리 편'의 견해에 우호적이고 낙관적인 평가를 내리기 쉽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도 다음과 같이 밝힌 것을 보면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만국 공통의 현상인가 봅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터무니없는 제안도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제안이라면 확고한 믿음을 갖는다.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325면

 
게다가 개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문화적 맥락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나의 사람, 나의 편'에 대한 애착 혹은 편애가 유독 강할 것 같습니다. 공동체 문화의 역기능이 이러한 측면에서 발현되기 쉬울 것 같고요. 이를테면, 제가 오늘 다루고 싶은 핵심 키워드이기도 한 공적 마인드의 부재와 같은 문제점 말입니다. 나의 부하직원, 나의 상사, 나의 선배, 나의 고향 사람이므로 그릇된 결정을 내리거나 잘못을 범해도 무조건적으로 옹호해주거나 성찰과 반성을 통해 바로잡는 과정이 없이 무비판적인 낙관론을 견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대니얼 카너먼은 이러한 '인내'에 '대가'가 따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낙관적 기질의 장점 하나는 장애물을 만나도 하던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인내에는 대가가 따를 수 있다.
- 같은 책 382면

 
사고, 범법행위, 도덕적 타락, 경제적 손실, 성장의 저해, 신뢰의 붕괴 등 '바로잡지 않음' 혹은 '묵인'에 상응하는 대가를 온 공동체가 지불해야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일원의 모든 크고 작은 잘잘못을 가린다면 세상에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세상에 어디 있기나 할까요? 허물 많은 죄인인 저부터도 제 부끄러운 역사를 낯낯이 들춘다면 아마 저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뉘우치고 돌이키며 성장할 기회를 서로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아름다운 모습이요,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관용 정신입니다. 무서운 점은, 관용묵인이 되는 순간 우리의 공동체는 온정주의에 빠져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집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안 1. 공과 사 구분하기

 
공적 마인드를 지닌 건전한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방법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공과 사의 구분입니다. 각종 의사결정에 있어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친밀감을 명확히 구분하는 태도를 지님으로써 우리는 공적 마인드를 함양할 수 있습니다. 공적 마인드를 지닌 상태에서 볼 때, 동료가 놓치고 있거나 그르치고 있는 일을 바로잡아주는 것은 동료를 향한 '지적질'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료 개인과 공동체 전체를 향한 진정한 존중의 모습이지요. 공적 마인드를 지닌 상태에서 볼 때, 나의 실수를 누군가 짚어준다면, 이것은 개인적인 공격이 아니므로 '모멸감'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실패를 예방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만한 일인 것이지요.
 
 
 

대안 2.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민주적 소통 구조

 
공적 마인드를 장착한 조직문화를 지니기 위한 전제조건은 민주적이고 원활한 소통 구조입니다. 선배나 상사의 말씀에 대해 '그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하극상'으로 여겨지지 않고 '건설적 논의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때 공동체 일원들은 의견 개진에 있어 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일원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하여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성공적인 집단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겠네요. 참 좋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민주적 소통 구조의 실현을 위해서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권력을 공동체의 모든 일원들에게 분산시키는 일[혹은 존중의 자세]입니다. 제왕적 군주, 혹은 교주와 같은 신봉[혹은 숭배]의 대상 아래에서 일원들은 안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공동체가 안전해지도록 먼저 각자의 소임을 다하고, 공적 마인드와 민주적 소통 구조를 지니고 바람직한 길을 선택해 나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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