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4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섬뜩한 눈이 내린다

한강 작가의 에서 내리는 눈은 소리 없이 사각사각 내려와 소복소복 싸이며 강아지와 어린이들이 뛰놀게 만드는 눈이 아닙니다. 다음은 '폭설' 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눈에 대한 묘사들입니다. (59) 흰 새들의 길고 찬란한 띠(60) 눈이란 원래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지상에서부터 끝없이 생겨나 허공으로 빨려 올라가는(63) 잿빛 하늘과 아스팔트 사이의 허공을 촘촘히 꿰매는 무수한 흰 실들(67) 수천수만의 새떼같은 눈송이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나 바다 위를 쓸려 다니다 빛과 함께 홀연히 사라진다.(71) 숨막히는 밀도의 저 눈보라(71) 어디까지 구름이고 안개이고 눈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저 일렁이는 회백색 덩어리(74) 허공 위로 고운 소금 가루 같은 눈발이 반짝였다.(87) 버스 앞유리의 와이퍼가 ..

도서 2024.12.20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전에 <작별>을 먼저 읽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며칠 전 두 작품의 연관성에 대해 논하며 를 읽기 전에 을 먼저 읽으면 좋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순서로 글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예상하셨겠지만, 당연히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순서를 지켜 읽지 않아도 괜찮아물론 출판된 순서를 볼 때 이 에 앞서고, 뒤에 출판된 책에 앞선 책의 출판 사실을 언급하는 등 관련지어 순차적으로 읽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있을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독서라는 것이, 모든 독자가 저마다 다른 배경지식을 보유하고 각자 처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글을 나름의 방식으로 탐험[혹은 '향유'라는 단어를 저는 쓰고 싶군요]해가는 활동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순서에는 정해진 순서나 절대적인 규칙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각 작품 자체가 그 자체..

도서 2024.12.19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기 전에 <작별>을 읽어야 하는 이유

김영하 작가의 , 마거릿 랜클의 , 시미즈 하루키의 등 작별을 소재로 하는 책들은 참 많습니다. 사랑이 영원불변의 소재여서 그런가 봅니다. 또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저마다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는 사건이어서 더욱 이야깃거리가 많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한강 작가는 '작별'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두 글의 제목에 채택하였습니다. 하나는 단편 소설의 제목이 되었고, 하나는 상반되는 문구가 되어 장편 소설의 제목이 되었네요. 저의 예상과 달리 우연이 아니었습니다.학교 선생님께 를 먼저 읽을 수 있도록 배려를 받고, 비슷한 시기에 친한 옛 동료분께 을 추천 받은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바쁜 시기라는 핑계로 짧은 글을 먼저 펼쳐든 것도요. 한강 작가의..

도서 2024.12.17

한강의 <작별> 속 '손들'을 다시 쓰다

한강 작가의 단편소설 은 성실하고 어려우며 슬픈 삶을 살다가 별안간 눈사람이 되어버린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엄마들에게는 특히나 너무도 아픈 책이라는 추천을, 엄마인 지인에게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에는 손에 대한 묘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해설 같기도 하고, 비슷한 의미를 다른 말로 다시 표현하는 paraphrasing 같기도 하여 '다시 쓰다'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직접 인용한 표현은 작은따옴표로 표시하였습니다.       바스러진 손가락 끝그녀가 자신이 눈사람이 되었음을 처음 알게 되는 것은, 무딘 감촉의 원인을 확인하고자 장갑을 벗었을 때입니다. 손가락을 문지르자 고운 눈가루가 떨어져 내리고, 조금 힘을 주어 만지자 손가락 끝이 부스러져버립니다. 그녀의 존재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네요...

도서 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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