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다가 의아한 구절을 마주하였습니다.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신경경제학자들은 자기공명영상 기계로, 자기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행동한 사람을 처벌하는 데 개입한 사람의 뇌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타적 처벌을 할 때면 뇌의 '쾌락 중추' 활동이 활발해졌다. 사회질서와 공정 규칙을 준수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포상을 받는 셈이다. 이타적 처벌은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접착제가 될 수 있다.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454면
제가 의아했던 지점은, 사람마다 '이타적'이라는 의미를 규정하는 방식과 범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사회적 규범이나 질서에 대한 판단은 다소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를 금하는 경우 이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사진을 좀 찍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여긴다고 칩시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사람이 미술관의 촬영이 금지된 구역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보죠. 그리고 첫 번째 사람이 두 번째 사람에게 '사진 찍으면 안 된대요'라고 말했다고 칩시다. 자신의 기준에서는 '이타적 처벌'을 한 것이지요. 하지만 두 번째 사람은 당연한 한 제재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다소 부당한 간섭'을 받았다고 여길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사람은 내집단에 대해 관대하고 동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집단을 준거 집단으로 삼아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편향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치우친 판단을 한 상태에서 외집단에 대해 '이타적 처벌'을 하며 쾌락을 느끼는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볼까요? 어쩌면 우리가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겠죠.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의 발췌문은 보완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다음과 같이 바꿔보면 어떨까요?
신경경제학자들은 자기공명영상 기계로, 자기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행동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데 개입한 사람의 뇌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러한 '이타적' 처벌을 할 때면 뇌의 '쾌락 중추' 활동이 활발해졌다. 집단의 질서와 준거 집단의 공정 규칙을 준수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포상을 받는 셈이다. 소위 '이타적' 처벌은 내집단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접착제가 될 수 있다.
- 위의 발췌문을 다시 쓴 내용
이러한 '이타적 처벌'이 폭력적이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의 자세,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고 또 긍휼히 여기는 '진정한 이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뼛속까지 의롭고 매사 옳은 사람은 한 명도 없잖아요.
오랜만에 생각을 써보려니 쉽지 않습니다. 읽고 쓰며 정진하는 일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평안한 밤과 새날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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