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의 <생각의 시대>를 다시 펼쳐들었습니다. 생각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읽은 내용 중 의미 있다고 판단한 부분을 발췌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각의 도구들은 먼저 그리스에서 합리적인 지식, 창조적인 예술, 그리고 민주적인 사회 제도를 생산해 오늘날에도 누구나 경탄하는 그리스의 황금기를 일구었다. (12)
개인의 지식은 개체 발생적이다. 누구도 지식을 갖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 개인은 누구나 무지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자기가 사는 시대가 도달한 지식 수준에 스스로 다가가야 한다. (14)
정보혁명은 지식의 수명을 단축했다. ... 이제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격변하는 환경을 꿰뚫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획득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그에 합당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쏠려 있다. 한 마디로,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생각의 시대다! (16)
- 김용규 <생각의 시대>에서 발췌
여기까지 읽다가 저는 조금 회의가 들었습니다. 생각이 필요한 시대라고 모두가 말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시대를 이끌어간다는 사실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생각하는 사람을 곁에 두기를 원할까요? 왜냐하면 생각하는 사람은 나의 치부를 간파하기도 하거든요. 저희 동료 선생님이 학생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으면서 동시에 맹랑하게 따지고 드는 모습을 두고 농담 섞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면 그 비판적 사고로 우리를 비판해." 물론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대견해하며 말씀하셨지요.
나보다 윗사람이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는 일도 속이 적잖이 쓰라린데, 하물며 나의 동급생이나 하급자가 나의 잘잘못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일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는 말씀이지요. 우리는 어쩌면 그냥 '나의 말을 잘 듣고 순종적이면서 조금은 어리숙한' 사람을 곁에 더 두고 싶어할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볼까요.
상명하복의 문화가 익숙한 나라에서 비행기의 기장이 옳지 못한 판단을 했을 때 부기장은 이를 바로잡는 말을 하기 어려워하고, 따라서 이 상황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고 합니다. 아무리 아랫사람이 최신 트렌드에 맞게 신제품 출시 아이디어를 내도 부장님이 이를 잘라버리면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는 관료적 조직 문화를 지닌 기업은 결국 쇠락의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생각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학교 교육의 목표는 균형있게 생각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되어야 하겠고요.
그렇기에 저도 생각을 하며, <생각의 시대>를 잘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으슬으슬 추운 늦가을의 오후 따뜻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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