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의 <생각의 시대>를 읽고 있습니다.
키토는 "한 민족의 정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정신이 만들어낸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언어의 구조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리스의 언어와 예술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정확하고, 명료하고, 구조적'이라는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문화 현상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이겠지요. 책에 인용된 시 두 편을 재인용 해보겠습니다.
(A)
산 중의 왕,
오래 전에 산들은 그에게 왕관을 씌워주었네.
바위 왕좌 위에 구름 예복을 입고,
눈의 왕관을 쓰고
(B)
거대한 산 정상, 별들의 이웃
(A)에 비해 (B)는 수식어가 없이 간결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름답습니다. (A)는 영국의 바이런이 작성한 시이고, (B)는 그리스의 아이스킬로스가 쓴 비극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 인용한 시라고 합니다. 그리스의 간결함은 건축물에도 나타납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장식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산물은 그리스어의 간결함이 각각 사고 구조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합니다.
다른 예도 살펴볼까요?
영어는 하고 싶은 말인 동사가 주어 직후에 오는 S+V+O의 문형을 띕니다. 게다가 문단에서도 주제문장이 문두에 위치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직설적 사고 방식을 지녔습니다. 거절을 하더라도 직설적으로 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여겨진다고 하지요. 한편 우리나라 말의 어순은 S+O+V의 형태이고 주제문장도 마지막에 위치하는 미괄식 구성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직설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둘러서 말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감정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편이지요. 그래서 이를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익명게시판이나 야자타임과 같은 문화가 생겨났고 말이지요.

우리가 평상시에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들이 우리의 문화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언어를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경각심이 듭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 한편 좋은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수업 시간에 어떤 언어를 써야 할지,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언어를 가르쳐야 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영어가 도구 교과이므로 내용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일부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회 문화, 역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어라는 도구에 어떤 내용을 실을지 하는 문제는 오히려 매우 중대한 고민 지점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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