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시 한 수 감상하시죠.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국어 시간에 배워서 익숙하게 알고 계신 박목월 시인 님의 '나그네'입니다. 참 아름답지요. 마을마다 술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저녁놀이 하늘을 발갛게 물들였고요. 그 가운데 나그네가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신선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지요.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가 쓰인 시기입니다. 박목월 님의 '나그네'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쓰였다고 하네요. 과연 일제의 수탈이 가장 심각하던 그 시기에 곳곳에 술이 익어가는 내음을 맡으며 신선놀음을 할 수 있었을까요?
같은 시기에 쓰인 다른 시의 일부를 감상하시겠습니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그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 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 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 이용악 '낡은 집' 부분
털보는 또 아들을 보았습니다. 원래 있던 식구 먹을 음식도 없어 몇 날 며칠씩 굶기가 일쑤인데 입이 하나 늘어났네요. 저릎등은 마름 삼대를 태워 밝히는 불인 저릎등이 시름시름 앓듯 타들어가는군요. 가장인 털보의 마음도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어떻게 다 먹여 살리나, 털보의 눈시울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1930년대는 이토록 힘들던 시절이었다는 것이지요.

다시 스크롤을 올려 박목월 시인님의 시를 봅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가 더 이상 호젓하면서도 멋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인님은 현실이 너무 아파서 꿈에 그리는 이상향이라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무리 그래도 시인님이 좀 야속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뿐인지요? 물론 모든 시가 사회 현실에 동참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과 유리된 작품임을 알고 나니 감동이 반감되는 느낌입니다.
동일한 렌즈를 그대로 교육 현장, 혹은 저의 수업에 갖다 대 봅니다. 주어진 교과서를 충실히 가르치는 것도 분명히 의미가 있고 중요한 수업입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머무는 수업, 혹은 교실 안에서 머무르는 수업은 학생들이 급변하는 미래 시대를 살아가도록 준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지요.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주어진 놀라운 기회이자 사상 최대의 위협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우리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독자님들께서도 저의 고민에 동참해 주시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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