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생각에 관한 생각> 21장 '직관 대 공식' 내용은, 업데이트가 필요하게 느껴졌습니다.
1. 카너먼의 직관 무용론
해당 장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인간의 직관보다 알고리즘, 통계 자료, 빅데이터의 정확성이 높으므로 직관을 무시하지는 말되 무작정 신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타인의 직관을 무시하지는 말라'는 언급은, 직관 옹호론자들의 비난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합리적인 지표와 객관적 수치를 통한 판단이 인간의 직관에 의존하기 쉬운 총체적 평가를 능가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글의 시작이자 결론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여기에서 '무시할 만하지 않은'(저는 이 말이 영 불편하게 여겨지는가 봅니다) 직관이라 함은, 충분하고 종합적인 판단 절차를 거친 상태의 직관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니얼 카너먼은 직관(혹은 숙고를 거치지 않은 즉각적인 판단)을 배제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취합니다.
2. 챗지피티가 쏘아올린 직관 불신 풍조
물론 숙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그의 주장에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지점은, 통계를 신뢰하지 못하고 "기계적이다, 원자론적이다, 부가적이다, 확정적이다, 인위적이다" 등의 비난을 쏟아내는 한편 직관에 대해서는 "역동적이다, 보편적이다, 의미있다, 전체적이다" 등의 감정적 평가를 내리는 임상의들의 입장을 평가절하하는 듯한 서술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저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의 출현과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은 통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관을 따르기를 선호하기는 커녕, 빅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습득하게 된 한편 자신의 직관은 전혀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판단 능력의 상실' 혹은 '판단에 대한 효능감의 부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늘 참관한 어떤 수업에서도, 챗GPT의 답안을 오류가 없는 모범 답안으로 상정한 상태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크게 염려가 되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학습한 데이터이 부족하거나 편향된 경우 신뢰도가 낮은 답변을 생성하기도 한다는 점을 (학생은 잊는 순간이 있더라도 지도의 의무가 있는 선생님은 더더욱) 잊지 말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버전으로 글 다시 쓰기
대니얼 카너먼의 '직관 대 공식'의 마지막 부분을 다음과 같이 다시 써보았습니다.
우리는 통계를 활용함에 있어 타당한 평가 지표를 도입 및 활용할 수 있도록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빅데이터를 활용한 산출물을 반드시 다각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요소별 평가를 진행하되 최종 평가는 기계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백인이 들고 있는 물건은 체온계로, 흑인이 들고 있는 것은 총으로 인식하는 기계의 판단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함양해야 할 역량은 고급 문해력과 사고력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편향을 인식하고 걸러내야 하며, 알고리즘으로는 불가한 영역 간 접목을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잘 훈련된 직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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