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우리의 직관이 틀릴 수 있고, 너무도 명백해 보이는 증거도 때로는 타당한 근거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타당성 착각'의 개념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입증한다.
1. 무지에 대한 무지
장교 훈련을 받을 후보들을 평가하는 작업에서 동료와 함께 '누가 책임자 역할을 하는지, 누가 지도자 역할을 하려다 퇴짜를 맞는지, 각 군인은 팀 전체에 어떤 식으로 협조하는지' 기록하며 '완고한 사람, 고분고분한 사람, 거만한 사람, 인내하는 사람, 성마른 사람, 집요한 사람, 잘 포기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장교 훈련 후보로서의 적합성을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호 검증을 거친 관찰 결과와 실제 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의 수행 정도를 추적 관찰한 결과, '눈을 감고 찍는 것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는' 예측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직관에 의지하지 말고 근거에 기반한 명철한 사고를 해야 한다'는 류의 교훈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예시에 해당하며, 카너먼은 이러한 반례가 결코 '희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우리가 증거라고 확신하는 단서들은 복잡다단한 세상, 각종 현상, 그리고 사람을 설명하기에는 사실상 너무도 불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자신의 인식과 판단 능력의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판단과 예측 내용을 철회하기는커녕 초기의 판단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주식 전문가들은 주가에 대한 자신의 예측 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순전히 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에도 자신의 전문적 판단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이란 얼마나 완고하고 고집 센 존재란 말인가.
2. 무능을 인정할 용기
자신의 연약함과 이로 인한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는 실로 엄청난 용기와 결단, 그리고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 공동체의 허물을 놓고 통회하는 사람은 지도자이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어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 9장 5~6절 말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다른 민족과 통혼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에스라는 '잘못을 저지른 쟤를 벌해달라'고 탄원하는 대신 민족과 조상의 죄악을 '우리'의 잘못이라 지칭하며 회개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우리나라와 민족, 가정 그리고 나와 타인의 연약함과 허물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나와 타인의 무능함과, 이에 대한 서로의 자세를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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