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당* 거래, 그리고 공동주택 경비원의 업무 범위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1. 1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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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거래를 하고 오는 길이다.
 
경비실에 맡겼으니 찾아가라고 했다.
 
놀라웠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경비원의 직무 범위에 '주민의 잔심부름 처리'는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비실에 불이 꺼져 있는데요,
 
라고 메시지 보내자
 


경비가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라는 답신이 왔다.
 
경비가, 라는 말이 서늘하게 들려왔다.
 
 
 
 
 
 
 
 
 
막상 대면하여 만나보니,

정말 구김살 없고 점잖은 미소를 지닌 사람이었다.
 
 
 
아, 아예 모르고 있구나.
 
당신의 눈빛이 타인에게 학습된 무력감을 형성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를.
 
 
 
경비아저씨께 이런 부탁까지 하시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말하면 나를 정말 이상한 여자로 보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슬퍼졌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2021년 개정안에 따르면 '택배물품보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엄밀히 면대면 중고 거래 물품은 택배물품에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어쩌면, 나는 해당 거주 지역의 '외부인'에 해당하므로 '외부인 출입 관리'라는 주요 업무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표 하단에는 '일반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대개 용역업체나 입주민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기 십상인 문구가 들어 있다.
 
그런데, 혹시나 100명이 넘는 입주민이 중고 거래 물품을 당연한 듯 맡기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정작 경비원은 다른 주요 업무 수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고, 화장실 가거나 식사할 시간이 부족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출처: pixabay

 
 
 
경비 아저씨의 서글픔이 느껴져서 속상하다.
 
 
 
혹시 내가 경비원 아저씨께 지나친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어쩌면 우월함을 짐짓 숨긴 과장된 친절함은 더 역겨울지도 모르니까.
 
 
 
정말 모르겠다.
 
 
 
 
봄이 어서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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