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애들은 심지어 착하기까지 해요' 라는 말이 올해 모든 교사의 목표가 되면 어떨까.
로 맺었던 지난 글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교사들이여, 아이들이 착하다고 말하지 맙시다 (tistory.com)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전인적 성장이기에 지적 능력을 습득하는 것도 (지나치게 편중되어 강조되는 것이 문제일 뿐) 엄밀한 교육의 목표이다. 그런데 위의 문구를 해석해 보면, 일정한 지적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착하기만 한' 것, 다른 말로 해서 실력은 없고 인성만 갖춘 상태를 일정 수준 '비하'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이 나의 고민의 지점이었다.
왜냐하면, 인성, 혹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것도 엄연한 실력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와 매리언 울프의 주장을 차례대로 인용함으로써 공감이 곧 능력이라는 사실을 논증하고자 한다.
#1. 한나 아렌트의 분석
타자 중심의 윤리를 강조한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대학살에 아주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 죄목으로 처형된 아이히만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관한 슬픈, 그리고 아주 불편한 진리는, 아이히만으로 하여금 종전 무렵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갖도록 만든 것은 그의 광신이 아니라 바로 그의 양심이라는 점이다.
다음은 같은 책 서두에 인용되어 있는, 다른 보고서에서 아렌트가 밝힌 내용이다.
이 악행은 악행자의 어떤 특정한 약점이나 병리학적 측면, 또는 이데올로기적 확신으로 그 근원을 따질 수 없는 것으로, 그 악행자의 유일한 인격적 특정은 아마도 특별한 정도의 천박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또 그에 앞서 있었던 경찰심문에서 보인 그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서 사람들이 탐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특징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흥미로운, 아주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이었다. 그는 한때 자기가 의무로 여겼던 것이 이제는 범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이러한 새로운 판단의 규칙을 마치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언어규칙에 불과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직무를 너무도 충직하게 수행한 결과, 끝까지 대학살을 자행했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조직적 살인 행위에 가담하였고, 그것이 이제는 범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또다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읽을 수 없고, 따라서 가치 판단도 할 수 없는, 전적인 무능의 상태인 것이다.
#2. 매리언 울프의 분석
매리언 울프도 <다시, 책으로>에서 다음과 같이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였다.
<실제의 그리스도>에서는 20세기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삶과 사상을 통해, 우리가 타인의 관점을 취하지 못하면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대한 결과가 빚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본회퍼는 처음에는 설교단, 그다음에는 옥중에서 줄기차게 설교를 하고 글을 썼습니다. 당시 대다수 사람은 유대인이었던 예수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 자행되는 유대인 처형을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본회퍼는 이를 비극적인 무능 상태라고 개탄했지요.
#3. 결론
타인의 관점에 이입하여 현상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은 하나의 실력이다. 거의 모든 방면에서 열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공지능 시대에, 심지어 타인과 교감하지도 못하는 인간을 상상해 보라.
공감 능력의 부재는 어쩌면 가장 심각한 무능의 상태인지도 모른다.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적 글쓰기 수업을 위한 첫 단계 - 좋은 텍스트를 선정하라 (48) | 2024.02.23 |
---|---|
거짓말 하는 인간 - 인류의 절망과 희망 (24) | 2024.02.21 |
매리언 울프가 상기시켜 준 연극의 매력 (53) | 2024.02.18 |
교사들이여, 아이들이 착하다고 말하지 맙시다 (44) | 2024.02.18 |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 #4 - 인간이란 무엇일까? (33) | 2024.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