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교수의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를 읽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책에 붙들려 한 시간 이상을 보내야만 했다. 생각의 깊이도, 문체도, 풀어 설명하는 방식도, 심지어 표지까지, 무척 흡인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동떨어진 생각만을 담아내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지만, 책을 이해하려 애쓰고 나름의 관점을 정립하려 분투하는 과정에서 독자의 생각의 범위와 깊이가 조금이나마 더해지는 것 또한 저자의 집필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단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밝힌 ‘곁눈질’이란 타인의 시선과 판단(They say)을 계속해서 의식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유의 중요성에 대한 사유를 다음의 키워드를 따라 풀어나간다.
#1. 엄격함과 엄밀함
엄격(嚴格)함은 정해진 틀에 맞춰 바로잡는 것으로, '틀'을 중시하는 폐쇄적 제약이고, 엄밀(嚴密)함은 잘 안 보이는 것을 강하고 또 조밀하게 들여다보고 생각을 따라가느라 틀을 벗어나게 되기도 하는 사유를 말한다고 한다. 기독교인의 눈으로 의미를 읽어 본다면, 안식일을 지켜야 하므로 병든 자를 고쳐주면 안 된다는 율법주의자들의 태도가 엄격함에 해당될 것이고,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안식일의 참된 의미라고 설명하시고 손 마른 사람의 병을 고친, 그러느라 표면적인 규례를 어긴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에 대한 입장이 엄밀함에 해당할 것이다. 엄격함은 닫아 버리고, 엄밀함은 깊고 넓게 펼치는 개념이다.
하지만 깊이있는 통찰과 적용 혹은 변주가 가능해지려면 경계가 분명 필요하다. 낭만주의 곡을 연주할 때 음의 장단을 다소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나 이 또한 “허용범위” 내에서 적용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엄밀이 없는 엄격은 본질을 잃어버리기 쉽고, 엄밀이 존재하려면 엄격이 필요하다.
엄격과 엄밀은 상보적인 개념인 듯하다.
#2. 외재적 비판과 내재적 비판
외재적 비판은 상대방의 '입장' 바깥에서 입장 자체를 겨냥해 비판하는 것을 말하고, 내재적 비판은 상대방의 논지를 최대한 보강해 주면서, '그렇게 해도 문제가 되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외재적 비판을 '반대' 혹은 '비난'으로, 내재적 비판을 '건설적 비판'으로 설명해 볼 수도 있을까 싶다. 가령 니체의 글을 읽을 때 니체의 관점에서 니체를 비판하며 니체가 놓치고 있는 것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혹시 우리가 이러한 내재적 비판의 자세를 자기 자신에 대해 견지하게 된다면, 모두가 표리상동(表裏相同)에 가까워지는 바람에, 세상의 모든 폭력과 갈등의 문제가 해소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내재적 비판이 가능한 숭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철저히 객관화 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겉과 속이 완전히 일치되는 것은 인간 존재의 특성상 가능하지 않고, 또 저마다 다른 가치관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론은 지나친 비약인 듯하다.)
#3. 편견은 무지
배경지식이 충분치 않아 이 부분을 나의 언어로 잘 전달하지는 못하겠으나, 서구문화의 특권적 기원으로서의 그리스 문화에 대한 생각과, 동양에 대한 지식의 부족분을 메우는 완고한 편견들이 19세기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의 문제였노라고 필자는 설명하였다. 완고한 편견은 무지와 몰이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어떤 대상에 대해 잘 모르면, 나의 한정된 경험과 인식이라는 렌즈, 혹은 색안경에 비추어 대상에 대한 추측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해와 미움과 슬픔들이 솟아난다.
그런데, 설령 가능하다 손 치더라도 모든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려는 시도가 과연 바람직한가, 멈추어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로마서 3장 10-12절
이 구절이 과연 그러하다는 사실은 그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사람 자체에는 소망이 없으므로, 나와 타인의 생각을 그저 “알고자” 깊이 파고드는 것은 허무함에 이르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생각을 촉발하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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