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역동 - 관성편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5. 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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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 친구를 보호해주고 싶은 움직임, 혹은 권력에의 동조


일전에 위험을 감지한 반에서, 여러 이상 증상이 나타나 저는 또 한 차례 감정의 동요를 겪었습니다. 왜 친구가 발표할 때 여기서 소곤, 저기서 소곤소곤 하는 소리가 끊임이 없었을까요?

저는, 친구가 발표할 때 딴청을 하는 서로 다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방금 친구가 뭐라고 발표했지요?


하며 경청을 요청하며 훈계하는 말을 네다섯 번 가량 반복해야 했습니다. 마치 두더지 게임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직전 수업을 포함한 평소 수업 시간에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힘 없는 학생까지도 소근거림에 동참하더군요.

학생들이 왜 그랬을까요? 제가 이른 결론은, 힘에 대한 관성 혹은 권력에의 동조가 원인이 되어 나타난 현상입니다.

특정 무리 학생의 일탈을 지적하며 꾸지람하는 분위기로 마무리된 이후 첫 시간에, 선생님의 지도에 순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지적받은 학생(힘의 중심에 있던 학생)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되잖아요. 힘의 세기를 빌어 표현하는 것이 거창하게 여겨지신다면, ‘우정’ 혹은 ‘의리’라는 말로 바꾸어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행동을 지적하는 교사에게 적대감을 느끼고, 기존 교실에 형성되어 있던 힘의 방향과 세기를 유지하는 데, 소근거림이라는 소극적 반항을 통해 힘을 보태준 것이지요.

제가 특정 집단의 학생을 악마화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오해하시면 무척 곤란합니다. 그저 목소리를 크게 낼 자신감과 배짱이나 인기, 혹은 일정한 추종자의 무리나 동조 세력을 보유한 ‘인싸’로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해야만 하는 불편을 감수할 기회가 없었을 수 있지요. 한편, 해당 학생들이 다른 집단, 이를테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혹은 놀이터에서 지녔던 힘은 그때 그때 매우 달랐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학생 자체의 근본을 선 혹은 악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무쪼록 현재 이 공간에서 강자인 학생에게 공격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던 학생은, 교사보다는 인싸 학생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일상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겠지요. 소근거림에 동참하는 선택이 어찌보면 학생의 입장에서는 당연했을 겁니다.







한편 이진경 교수의 니체 해설서 <우리는 왜 끊임없이 곁눈질을 하는가>에는 강자와 약자의 개념이 반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자는 약자요, 이러한 힘의 균형을 깨고 변화를 시도하는 무리를 강자라고, 니체가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출처: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



니체의 용어를 빌어 설명한다면, 제가 오늘 특정한 교실에서 경험한 다양한 힘(50분 동안 이어지는 수업에서도 아주 여러 모양의 상호작용이 형성되고 소멸하고 발전하지요!) 중에서, 친구의 발표를 경청하도록 시도하는 과정에서 겪은 힘의 작용에서는, 저는 강자였고, 학생들은 약자였던 것 같지요?



한편, 제가 구상하고 있는 수행평가 논의 과정에서 수업을 더 이상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던, 제 소중한 동료 선생님들과 저는 모두 강자였겠네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역동 - 관성편, 재미있으셨나요?



평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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