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펄롱은 자기 빵을 까맣게 태워버리고는 잘 지켜보지 않고 불에 너무 가까이 갖다 댄 자기 탓이라며 그냥 먹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었다. 마치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일요일 밤에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심란한 걸까? 펄롱은 어느새 또 미시즈 윌슨 집에서 지내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다. 펄롱은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아서, 색전구와 음악 등등 때문에 어쩐지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서, 또 조앤이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합창단의 일원으로 완전히 어우러진 듯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에, 또 레몬 냄새가 그 정든 옛 부엌에서 크리스마스 물렵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p.35
며칠 전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뒤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조금씩 읽는 중인데, 읽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키건이 마치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너 지금 이런 생각 하고 있는 거지?‘ 하듯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위에 발췌한 부분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 나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무릎을 치던 나의 반응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글을 다듬어도 졸림의 흔적을 지우기 어렵다.)
- 외로움이 저 아이로 하여금 인기 없는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니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 자체의 특성이 타인의 접근을 막고 있는 것일까. 대학 시절 복지관에서 가르치던 00이가 학교에서는 아주 인기가 많은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었는데. 이 아이는 어떤 경우일까. 나도 아이가 외로움에 겨워 다가올 때 부담스러웠는데. 다른 아이들도 그런 것이겠지. 나를 왕따시키던 그 아이들도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서로 서먹서먹해요.’라는 말로 자신들의 집단적 냉랭함을 정당화하는 것은 정말 나쁜데. 이 학급의 화합을 위해서는 어떤 시도와 접근이 필요할까. 교사로서 나는 잘 처신한 것일까. 00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와 같은,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무는 하루를 보냈고, 마치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몽땅 상해버리기라도 할 것이라는 듯 아이들이 먹다 남긴 떡국을 먹어 치우고 만 나의 모습이 바로, 키건이 묘사한 펄롱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감정 이입은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한다.
728x90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비딕> 한 구절에서 시작해 본, 교사의 화용론 (28) | 2024.06.25 |
---|---|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 그리고 창발적 아이디어 (58) | 2024.06.19 |
교사로서 호감도를 높이는 방법 (30) | 2024.05.26 |
망한 수업과 원영적 사고 (45) | 2024.05.23 |
서울대 N번방 사건과 우리의 탄식 (53) | 2024.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