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왼손의 역할을 고민하며 안물안궁을 거부하다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6. 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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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교사로서 가는 수학여행(이라는 용어가 아직은 소규모 테마여행이라는 말보다 먼저 튀어나온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여행 가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책 두 권과 블루투스 자판기, 그리고 뜨개실과 코바늘을 챙겨 갔다.



말동무가 필요해서 내 옆에 다가오는 아이들을 무시하고 독서를 할 수는 없었기에, 책 두 권 중 한 권은 고스란히 들고 왔고, 나머지 한 권도 30쪽 내외를 간신히 읽고 돌아왔다. (물론 책장을 앞뒤로 넘겨가며 천천히 그리고 상세히 읽긴 했다.)
종일 아이들과 함께 한 후 야간 지도의 의무도 이행해야 했고, 차분히 매일의 기록을 남길 시간도 체력도 없었기에 자판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씩 배드민턴이나 족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살피거나, 아이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응대하면서도 할 수 있는 뜨개질은 제법 장시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오른쪽 손목이 아파왔다.



피아노를 칠 때 왼손의 역할


하루종일 칩거하며 낮잠을 자다가 늦은 오후 피아노 연습을 잠시 하면서, 뜻밖에도 뜨개질 후유증에 대한 해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아노에서 왼손은 주로 오른손의 멜로디를 든든하고 조화롭게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연습하고 있는 드뷔시의 <달빛>은 왼손으로 (분산된 화음을 하나씩 부드럽게 연결하여 연주하는) 아르페지오 주법을 구사하게 되어 있는데, 이때 손목을 굴리듯 이동하며 연주하면 손가락의 운신의 폭이 넓어져 제법 넓은 음역대의 구간도 음을 빠뜨리지 않고 잘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손목을 이동함으로써 더 넒은 음역대를 연주할 수 있게 된다



뜨개질에서 왼손의 역할


혹시 뜨개질을 할 때에도 왼쪽 손목이 도와준다면 오른손목의 부담이 덜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실을 코에 걸어 충분히 당겨내어야 직물의 모양이 풍성하게 되고, 여유공간이 생겨 뜨개질을 하기도 힘이 들지 않고 편안해진다. 반면 작업실을 충분히 당겨내지 않으면 모양도 너무 쫀쫀하여 볼품이 없고, 여유공간이 없어 힘이 바짝 들어가 손목은 더 아파오게 된다. 그리고 매번 오른손의 움직임을 크게 하고 힘을 주어 실을 빼내다 보면 손목이 몸살을 앓게 되는 것이다.

다음 두 영상은 차례로 왼쪽 손은 고정하고 오른쪽 손만을 활용할 때와, 왼쪽 손목을 움직여 오른손과 함께 협응 할 때의 모습이다.

오른손의 움직임만으로 뜨개질을 할 때



반면 왼손의 손목을 움직여 직물을 밀어냄으로써 작업실이 빠져나오는 것을 도울 때, 오른손의 움직임이 확실히 편안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왼손과 오른손의 협응을 통해 뜨개질을 할 때



왼손과 같은 역할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왼손의 함께함이 중요한 순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업을 할 때 열심히 대답해 주는 학생이, 강의를 할 때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주는 청중이, 공연을 할 때 손뼉 치며 환호해 주는 관중이, 회의를 할 때 적절한 의견을 내며 논의에 활기를 더하는 참석자가, 우리 인생의 귀중한 왼손들이다.

괴롭힘이나 따돌림의 현장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왼손은 어떨까.

우리가 저마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오른손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보이지 않지만 저 아래에 우리를 꼭 안아 든든히 받치고 있는, 하나님의 ‘왼손’에 대한 목사님 설교를 한 번 더 들어보아야겠다.







한편, 언니의 말에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해)’이라고 답하는 둘째 아이를 많이 나무랐다.

딸아, 우리, 되도록이면, ‘안물안궁‘ 대신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하고 답해주는 왼손이 되려고 노력하자꾸나. 물론,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



왼손잡이여서 좋다.



https://youtu.be/xElyBcLvlaM?si=ncv2vmP7jVqDWWr_

난 왼손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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