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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독서일기 #4 - 벌새와 파우스트의 낭만주의

남미 원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라고 합니다. 안데스 산맥에 커다란 불이 났다고 합니다. 다른 모든 동물들은 도망가는데, 벌새 한 마리가 화재 현장을 떠나지 않고 제법 떨어진 물가에서 물을 날라 불이 난 곳으로 날아와 물을 떨어뜨렸다고 하지요. 벌새의 몸집이 워낙 작아서 벌새가 부리에 머금을 수 있는 물은 한 방울에 불과했는데도 말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불을 끌 수 없을 텐데 왜 그러느냐는 동물들의 질문에 벌새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라고 답하고는 계속해서 물을 날랐다고 하네요. 참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무력감이 심하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어 보일지라도,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니까..

도서 2025.07.10

<파우스트> 독서일기 #3 - 우울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기술과 문명의 발전으로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되었고, 우리가 누리고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은 차고 넘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기준 전 세계 우울증 환자는 3억 5천만 명이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2018년에는 74만 7천 명에서 2022년 99만 5천 명으로 증가했다고 하고요. 우울증 환자가 이토록 많아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예전만큼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다는 뜻이잖아요. 자살률 등 숫자만 보더라도, 단순히 ‘진단을 많이 받아서’ 우울지수가 높아진 것은 아닌 것 같지요.제가 사회학자는 아닙니다만, 저 스스로의 모습만 봐도 마음이 많이 각박해지고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례로, 제가 지하철이나 기차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계신 분께 자리..

일상 2025.07.07

이원율 <여름이라는 그림> 독서일기 - 여름을 향유하다

연일 눅진한 공기에 불쾌지수가 올라가서 힘드시지요? 그렇다면 이원율의 을 추천해 드립니다. 마치 내가 명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고, 따라서 나의 삶이 명화 속 한 장면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여름을 주제로 한 작품을 총집합시켜 각각 ‘파도와 햇살이 춤추는 계절’, ‘눈부신 하루가 쌓이는 계절’, ‘푸른 그늘 아래 쉬어가는 계절’, ‘고요한 밤하늘이 마음을 두드리는 계절’이라는 네 가지 테마로 엮어낸 책입니다. 아름다운 그림, 그림에 대한 에세이, 그리고 그림과 그림 사이에 소개된 명구를 읽으며 정말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을 수 있답니다. 책의 질감도 맨질맨질 부드럽고, 글씨체도 참 예뻐요.제가 이제까지 향유한(‘읽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용 중 가장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

문화 예술 2025.07.05

이재호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 독서일기 - 심미안을 일깨우는 해부학 서적

일전에 모차르트가 프랑스혁명의 배후가 된 비밀결사단체인 프리메이슨의 열렬한 조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외에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베토벤, 리스트, 알폰스 무하 등 아주 많은 예술가들이 프리메이슨의 일원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놀란 이유는 예술가는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 예술만 했을 것 같고, 과학자는 뼛속까지 이성적으로 자연 현상에 대해 계산하고 있을 것만 것만 같은데, 실은 예술과 정치, 정치와 철학, 철학과 과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최근 읽고 있는 이재호의 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예술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또 과학이 얼마나 예술적인지를 알게 된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인체를 정밀하게 표현한 조각품을 제작하기..

문화 예술 2025.07.02

선생님들, '더러운' 시험 문제는 내지 맙시다

일단 ’더러운‘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에 사과드립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김밥을 사 먹는데 옆 테이블에 남학생 두 명이 앉아 시험 이야기를 하더군요. 과목명을 들으니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수학 시험 이야기도 하고, 사회 시험 이야기도 하다가 영어 시험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저는 더 이상 책의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글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학생들의 대화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시험문제를 ‘더럽다’는 표현을 써서 묘사하더라고요. 영어 시험에 대해 학생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복기하며 교사로서 저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영어 시험 문제 중 영영 뜻풀이 문제는 별로다. - 학생들은 맥락이 없이 배경지식이나 단순 암기에 의존하는 문제를 싫어하..

교육 2025.06.28

재난, 샤덴프로이데, 괴롭힘, 그리고

재난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다음은 재난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재난 재난 [災難]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 의도하지 않게, 원하지 않게 나에게 닥친 행복을 앗아가는 일을 말하네요. '변고'라는 표현으로 보아 갑작스럽고 불행의 정도가 큰 일을 뜻하는 듯합니다. 신현선(2020)은 재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합니다.재난은 안정적이었던 삶의 토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면서 파멸, 재앙, 시작 등과 같이 모순의 혼란 상황에 우리를 위치시킨다. 재난을 당하면 우리 삶에서 누리던, 별다른 문제가 없이 평온한 상태가 일순간 무너져 혼란스럽게 되어버리게 되겠군요. 가족의 상실, 실직, 건강 악화, 금전적 손해 등 다양한 일들이 우리를 혼돈의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겠습니다. 샤덴프로이데 한편 ..

일상 2025.06.27

김민철 <크리에이티브 어프로치> 독서일기 - 교사도 카피라이터처럼

김민철의 을 읽고 교사들이 이런 책을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사는 학생에게 교육 콘텐츠를 팔아야(혹은 배워보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 존재이니까요. 선생님이 싫으면 도통 그 선생님에게서는 배우고 싶지 않아지니까요.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내용을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결점을 자랑하라 광고 기법 중 '결점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합니다. 흠결인 것을 알지만 이것을 숨기기 위해 급급한 것이 아닌, 오히려 당당하게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면당하기 쉬울 법한데, 오히려 이러한 진솔함이 소비자의 호감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한 때 MZ 세대들 사이에서 "에이수스 노트북 스벅 출입 가능?"이라는 브랜디드 콘텐츠가 눈길을 끌었다..

도서 2025.06.20

<파우스트> 독서일기 #2 - 파우스트 A to Z

를 재독 하는 중입니다. 책을 읽으며 파우스트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을 메모해 둔 내용을 글로 남기고자 합니다. 오늘은 파우스트의 지적 겸손, 진실함에의 추구, 그리고 고뇌하는 모습에 대해 작성하겠습니다. 1. 파우스트는 지적 겸손을 지녔다? 아, 나도 이제 철학, 법학, 의학, 게다가 신학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철저히 연구했다. 그 결과가 이 가엾은 바보 꼴이구나. … 그리하여 안 것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23) 파우스트는 지적 열망을 지닌 사람입니다. 철학, 법학, 의학에서 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섭렵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적인 배움의 여정을 통해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 뿐입니다. 파우스트의 태도에서 우리는 지적 겸..

도서 2025.06.18

교사의 눈물 버튼에 대한 짧은 메모

저는 학생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행복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교육 동지들이 그럴 것입니다. 더듬더듬 문장을 끝까지 읽는 데 성공하는 모습,선생님의 영작에서 어법 실수를 발견해내는 모습,자신이 제법 어려운 빈칸 추론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놀라서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그래프와 지문의 논리적 상관관계를 분석해보라고 했는데 오히려 그래프의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설명해내는 모습,글쓰기의 정석과 포맷을 가르쳐줬더니 이것을 응용해서 자신만의 형식을 구축해보려는 모습,글쓴이의 주장을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멋지게 이야기하는 모습, ... 이 모든 반짝임을 볼 때 저는 때때로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습니다. 또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먼저 잠잠히 신뢰와 응원의 눈빛을 보내주는 학생과 동료..

교육 2025.06.11

<파우스트> 독서일기 - 시인에 빙의한 괴테

완독을 40페이지 정도 남겨 둔 상태에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시대를 초월하여 칭송받는 대작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표시해 두었던 부분을 몇 구절 필사하기 시작하다가, 그것도 충분치 않게 느껴져서 1부 첫 페이지로 돌아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책의 100쪽가량을 간신히 읽고 다른 책을 펼쳐 들기를 반복하던 저이기에, 447면에서 9면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겠습니다. 하지만 그간 제법 독서 훈련이 되었는지 이렇게 돌아와도 분명히, 그것도 더 기쁜 마음으로 완독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독서에 대한 효능감이 제법 생긴 상태인 듯하여 기쁜 마음에 사설이 길었습니다. 저는 또 한..

도서 20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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