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모비 딕>과 인간의 윤곽 그리기, 그리고 상호 신뢰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7. 1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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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4~435
길거리 기름집 간판의 고래 그림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대체로 그 고래들은 곱사등이 리처드 3세 고래라고 할 수 있는데, 성질이 매우 사나우며 선원 서너 명으로 속을 채운 파이, 즉 전원이 승선한 보트를 아침으로 먹고, 피와 푸른 물감이 뒤섞인 바다에서 몸부림치는 기형의 동물이다.
하지만 고래의 묘사에서 범하는 이런 무수한 오류도 따지고 보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생각해 보라! 과학 서적에 실린 그림 대부분은 해안에 떠밀려 온 고래를 보고 그린 것인데, 그건 용골이 부서진 난파선을 그려 놓고 웅장한 선체와 온전한 활대를 자랑하는 기품 있는 짐승을 제대로 묘사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코끼리는 전신을 드러내며 서 있지만 살아 있는 고래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닷속에서만 볼 수 있고, 물 위로 올라오더라도 몸의 대부분은 전함처럼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서 고래를 통째로 들어 올려 엄청난 부피와 굴곡을 고스란히 그림에 담는 건 일개 인간으로서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젖먹이 고래와 이상적인 어른 바다 괴물의 윤곽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젖먹이 고래를 배의 갑판으로 끌어올린다고 해도 형체가 이상하고 뱀장어처럼 유연하며 다양하기 때문에 정확한 모습은 아마 악마라도 포착하지 못할 것이다.






고래에 대한 묘사의 불능성에 대한 멜빌의 통찰을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파악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으로 바꾸어 이해하면 어떨까. 누군가에 대해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상태일지라도 여전히 그들의 (타인에 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일부분만 보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누군가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고, 접촉점이 적은 사람의 판단에 비해 다소 오랜 기간 지켜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의 증언이 신뢰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닌 것이, 사람의 됨됨이를 쉽게 간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편인 사람도 있기 때문에, 관찰 기간만으로 증언의 신뢰도를 판단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람 보는 눈’을 지녔다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다중적이고 가변적인 존재인 인간에 대한 판단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누군가에 대해 공통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이것은 그 사람에 대한 그나마 ’객관적인‘ 평가에 가까울 확률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다수의 소수[혹은 개별자]를 향한 편견, 혹은 심지어 폭력적인 시선‘일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고래보다도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에 대한 불완전하고도 불충분한 퍼즐 조각들인 것이다.



왜 이리 썰을 풀고 있는가 하면,

학생의 어떤 성향으로 인해 다른 영역까지도 판단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항변이자, 내가 학생을 옹호하는 관점 역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함에서 출발하는 성찰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픽사베이




그러나 일전에도 얘기했듯, 일단 학생의 말을 신뢰해 주거나 학생의 기본적 성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학생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말을 하는 것은 갈등 해결에 매우 유익하다.

첫째, 인정의 말을 듣는 학생은 자신에게 합당한 신뢰를 돌려받거나 혹은 교사의 신뢰를 빚지게 된다. 전자는 명예의 회복으로 인한 안정감을, 후자는 선함으로의 회귀를 촉구하는 부름에 대해 응답할 필요성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응답의 시기가 지금 당장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둘째,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학생과 교사가 강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인정하는 교사 앞에서 짐승처럼 포효할 학생은 없다.

셋째, 장기적, 지속적 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단 격앙된 감정을 한 김 빼내면, 다소 온건한 모드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를 시작되면, 문제의 해결점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낙인 효과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이 자신이 돌려받은[혹은 빚지게 된] 개인의 명예를 손상시킬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러한 긍정적인 행동 및 반응의 누적으로 인해 자아감과 평판이 향상될 가능성은 아주 조금일지언정, 높아질지 모른다.







출처: 픽사베이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어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 -이사야 11:6~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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