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롤스타즈까지 한 시간 남았다
마지막 과목 시험을 앞두고 어느 학생이 말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시험 감독으로서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데 활짝 웃어버렸다. 그래, 평가 지옥 비교 지옥에서 잠시나마 탈출하는 순간이로구나. 딱하고 또 기특하다.
그나저나, 시험 감독 들어가서도 마구 통제하려 들면 엇나가고 튕겨나간다. 하지만 격려의 눈빛을 미소에 담아 보내면, 학생들은 오히려 더욱 의젓한 모습을 하기도 한다.(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학생 혹은 자녀들에게 신뢰를 빚지게(?) 만드는 것은 아주 영리하고 지혜로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2. 선생님 식사 하시고 에세이 채점하셨나봐요
‘판사도 식사 전과 후에 내리는 형량이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인간은 그만큼 불완전하다. 선생님들도 그렇다. 그래서 여러 번, 교차해서 채점한다.’는 나의 설명을 듣고 어느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저희 반 에세이는 식사 후에 채점해 주세요.”
그리고 이를 기억하고 있던 학생이, 수행평가 점수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낸 것이다.
학생들은 대체로 자신의 에세이 점수며 논술형 문항 점수에 만족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러 해 관찰해왔지만 매번 신기하다. 과거 영어학습의 거듭된 실패 경험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이 원인일 수도, 아니면 서논술형 평가에 대한 부담감이 원인일 수도 있고,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다.
사전에 수립한 채점기준표에는 항목별 배점 및 급간이 칸막이처럼 나뉘어져 있기에 점수를 내 맘대로 높거나 낮게 부여할 수 없다. 그저 항목별 ’우수, 보통, 미흡‘이 각각 어느 선인지 한두 차례 논의하여 이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고, 상호 점검을 하며 채점자 간 신뢰도를 확보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은 만점의 70~80%에 해당하는 꽤나 만족스러운(디폴트값 설정에 대한 이야기는 미루기로 한다) 점수를 획득하게 되고,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최고점자는 많지 않아 자연히 변별이 된다. 채점자 숙련도도 나날이 높아져 채점에 드는 시간이 줄어든다. 천편일률적인 답을 수백 번 읽을 필요가 없어지고, 저마다 색깔과 성품과 경험, 그리고 생각의 깊이를 담은 글을 접하며 답안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학생들은 사고력과 영어 표현 능력이 향상된다. (2022 개정교육과정의 내용 체계는 ’이해‘와 ’표현‘이다!)
서논술형 지필 및 수행 평가는 여러모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평가 방식인 듯하다.
#3. 이번 1학년 시험이 어려웠다면서요
2학년 학생이 친구와 함께 교무실에 찾아와 물었다. 실은, 1학년 후배들 학습 내용으로 채택된 자신의 에세이가 ‘수준 높은’ 학습 내용과 평가 문항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 학생이 칭송을 바라고 온 것이었다. (당연히 칭찬을 받을 만한 학생이고!)
‘시험이 어려운 게 아니고 네 글이 수준 높았지. 도대체 이 선배님 누구시냐고 후배들이 많이 질문했어.’라는 나의 증언에 학생은 함박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학교는, 배움의 공동체이다.
달걀과 양갱과 과자로 끼니 때워가며 9시 40분까지 회의를 한, 시험 마지막 날 금요일을 마무리하는 나의 기분도... 대체로 만족이다. (호흡은 또 쉽지 않아지지만.)
https://youtu.be/BKLTYTfxgxw?si=7OhsePycGflV-Qml
https://youtu.be/_dp8oF70e8M?si=8RGxyLq6CbsL8c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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