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로 이루어진 블로그 글 한 편 써내기도 버거워하며, 다섯 장짜리 보고서의 1/5에 해당하는 분량은 잘라내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려 좀 전까지 수정을 한 데다가, 지난 글들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근거는 빈약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글쓰기 이력을 지닌 저이기에, 감히 누군가의 글을 비판할 자격은 되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생각하고 글 쓰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견습생으로서 송숙희 선생님께 사고력 수업을 들으며 비판적 사고를 연습해 보는 중이니, 귀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150년 하버드 사고력 수업> 2교시 '당신은 비판적 사고력이 있는가?' 중 '인생을 관장하는 비판적 사고력의 효과' 부분에 비판적 사고력의 효용이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1. 비판적 사고력이 있으면 무엇이든 잘 배웁니다.
2. 비판적 사고력이 있으면 투자 실패가 없습니다.
3. 비판적 사고력이 있으면 필요한 정보만 얻습니다.
4. 비판적 사고력이 있으면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5. 비판적 사고력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6. 비판적 사고력이 있으면 일머리가 생깁니다.
7. 비판적 사고력이 있으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상기 발췌한 부분을 저는 비판적으로 읽어 보고자 합니다. 오류의 이름은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을 참고하였습니다.
#1. 재서술에 그치는 오류
저자는 지적 겸손을 통해 격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겸손한 자세는 배움의 기본 요건이라고 설명합니다.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지적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음의 문단을 읽으며 저는 마음이 좀 어려워졌습니다.
p.101~102
배우는 능력의 핵심은 '겸손 모드'입니다. 잘 배우는 사람은 지적 겸손도가 높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잘 모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할 줄 압니다. 지적 겸손 지수가 높은 사람은 자신이 틀렸거나 잘 모를 때 쉽게 인정합니다. 펜실베니아대 심리학과 앤절라 더크워스 교수는 지적 겸손이란 결국 비판적 사고 능력이라고 단언합니다. 자기가 뭘 모르는지 아는 것이 지적 겸손이며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고 타인으로부터 학습에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면 지적 겸손으로 무장되고 무엇이든 배워 써먹을 수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 '배우는 능력의 핵심은 '겸손 모드'라는 주제 문장을 뒷받침하는 여섯 개의 문장에서 새로운 정보라고는 앤절라 더크워스 교수가 지적 겸손을 비판적 사고력과 동일시했다는 내용이 유일하고, 나머지는 같은 내용을 다르게 재서술하여 표현한 부분이기 때문이지요. 동어가 반복되는 것도 독자의 피로감을 더할 수 있겠고요. 다시쓰기를 통해 내용의 핵심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작업이 필요한 부분으로, '국민 글쓰기 교과서'를 표방하는 이 책에 수록되기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제가 이 부분을 다시 쓴다면, 지적으로 겸손한 태도를 지닌 유명인의 사례나, 겸손하지 않아서 겪은 개인적인 실수를 포함하여 넣으면 글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다른 가능성을 간과하는 오류
비판적 사고력은 주식 가치를 적절히 평가하고 효과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서술에는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다른 가능성을 간과하는 오류가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의 리스크 등 주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는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부 정보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비판적 사고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손익이 크게 발생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개인일지라도 주식 전문가가 아닌 이상 각 기업의 가치를 좌우하는 수많은 요인에 대한 최신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시시각각 업데이트 해나가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심지어 주식 투자에 실패하는 주식 투자 전문가도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주식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의 실패 요인을 단순히 비판적 사고력의 부재로 돌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역으로 비판적 사고력이 있으면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 혹은 심지어 '투자 실패가 없다'고 호도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인 것 같고요. 투자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 여기에서 비판적 사고력이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 논해본다면 어떨는지요?
#3. 잘못된 원인의 오류
저자께서는 팬데믹 기간 잘못된 의료 정보로 인한 혼란과 손실을 언급하며 비판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일단 잘못된 의료 정보로 인한 혼란과 손실이 지칭하는 내용이 불분명하여 문장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것 외에도, 코로나 시기의 혼란의 주된 원인을 비판 의식의 부재로 설명하기에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습니다.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지의 감염원으로서 이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 자체가 불충분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코로나 감염 환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로 백화점 등 사업장 전체를 폐쇄하고 방역을 실시하거나, 코로나 환자와 동선이 겹치는 것만으로 3주 간의 격리 조치를 시행할 필요가 없고, 공기 중 에어로졸을 통한 코로나 감염을 피하기 위해 물안경을 착용하는 행위는 예방 효과가 매우 낮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 우리에게는 근거에 기반한 비판적 사고력을 가동할 정보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두려웠던 것이니까요. 팬데믹 기간 혼란과 손실의 원인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은 데에서 찾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150년 하버드 사고력 수업>에 수록된 '인생을 관장하는 비판적 사고력의 효과' 부분을 비판적으로 읽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애들한테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면 그 사고력을 가지고 우리를 비판해.'
존경하는 동료 선생님께서 자조적으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송숙희 선생님, 앞으로도 멋진 글 써주실 것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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