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하느라 나서는데, 여름 내내 신던 신발 색깔이 눈에 거슬렸다. 신발장을 지키고 있던 샌들을 꺼내 신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니 왼발 뒤꿈치의 느낌이 이상했다. 신발 뒤축이 밑창과 조금 분리되어 있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접착제가 수명을 다한 모양이었다. 집에 들어갔다 올까, 하다 말고 지하철역에 거의 다 왔는데, 아뿔싸, 신발 뒤축이 맡창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버렸다.
물어 물어 찾은 상가 지하 구두 수선집이 열려있음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좀처럼 붙지 않는 신발을 가지고 씨름하시는 모습을 한참을 관찰하다가, 전면 벽장 가득 쌓여 있는 신발에 시선이 가 닿았다.
이건 신발 수선 맡겨놓고 아직 안 찾아가신 것들인가 보죠?
아뇨, 판매용이에요. 한 켤레 오 만원.
급기야 에르메스 슬리퍼를 두 켤레나 사서 하나는 신고, 두 켤레는 들었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명품을 휘두르게 됐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지하철에서도 신발이 잘 어울리나 제법 내려다 보기도 했다.
다음에 같이 쇼핑하러 가시죠, 하며 옆 선생님들께 너스레도 떨었다.
만족스럽게 집에 오는데,
뭐가 또 툭, 풀린다.
에르메스도 세월은 못 이기는 것인지,
나의 두텁발은 에르메스도 못 당해내는 것인지,
헐기까지 한 짝퉁 에르메스를 신고 그리도 안심이 되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허영과 탐심에 지배되지 않았음은 알겠는 것이
오늘의 감사 기도 제목이다.
한편 글을 쓰며 또 한 번 느낀 것은, 블로그 글이든, 보고서든, 강의든, 수업이든, 삶이든,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으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주까지는 학기초 업무와 개인 일정으로 인해 메모 형식의 글로 글쓰기 훈련을 연명(?)할 예정입니다.
변변찮은 글 읽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광복 79주년의 감격을 되새기며, 오늘을 마무리합니다.
평안하고 기쁜 밤과 새날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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