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부자들과 미국 부자들의 행복
조승연씨는, 우리 나라의 대부호가 다른 나라의 부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나라의 경우 대체로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자들이 ‘사무실’에 있다고 분석한다. 타인의 인정과 영향력을 중시하는 문화가 부자들의 선택에도 반영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편 미국에서 생활할 때 듣고 깜짝 놀란 점은, 미국 ‘할배’들의 로망은 평생 번 돈으로 요트를 한 척 사서 휴가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노년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어째서 그 많은 돈으로 빌딩이나 비싼 집을 사지 않고 요트를 사는 것일까,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서 그런 것이다.
https://youtu.be/6eLbXYzyOHs?si=0vm75_y1278-3RQU
#2. 빅터 프랭클이 선택하는 행복
한편 빅터 프랭클은 탈출을 포기하고 죽어가는 환자의 옆자리를 지키는 선택을 하고는 행복감을 되찾는다. 너무 극단적이어서 단순 비교가 어려워 보이는 두 사례를 나란히 늘어놓는 것은 반칙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긴 발췌문을 싣는다.
나는 마지막 회진을 빨리 끝냈다. 환자들은 막사 양쪽에 깔아 놓은 널빤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나는 환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는 거의 죽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상태에도 그를 정말로 살리고 싶었다. 나는 탈출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내 고향 친구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어쩌면 내가 약간 초조한 기색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도 나갈 건가요?”
나는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슬픈 눈초리를 피하기가 힘들었다. 회진이 끝나고 나서 나는 다시 그에게 갔다. 그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나를 맞았다. 어쩌면 나를 비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친구에게 함께 탈출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나를 엄습했던 그 불편했던 감정이 점점 더 심해졌다. 나는 갑자기 운명을 나 자신의 손으로 잡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막사 밖으로 뛰어나가 친구에게 그와 함께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연한 태도로 환자 곁에 그대로 남기로 했다고 친구에게 말하자마자 그 불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그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내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막사로 돌아가 고향 친구의 발끝에 앉아서 그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었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p.98-99
한 순간 한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 어디에 마음을 쏟고 재물을 쌓아두고 있으며, 또 행복과 기쁨, 혹은 내면의 평안을 위해 어떠한 선택을 내리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수척한 시부의 곁을 지키는 시모의 붉어진 눈시울을 뒤로하고 순천만 습지의 시구 사이를 걸으며, 또 문상 다녀오는 길, 건강을 위해 열심히 걷고 또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생각들로 내면을 채웠던가, 되돌아본다.
생명들이 이렇게 스러져간다.
나와 타인과 세상의 모든 죽음들 앞에 나는 묻는다.
나여,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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