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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재와 키완>을 통한 본질과 교과교육론에 대한 단상

글을써보려는사람 2024. 9. 1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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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세계와 역사와 운명을 과소평가하는 소리였다. 폭포의 물줄기에서 물방울 하나가 잠깐 거꾸로 튀어 오른다고 절벽 전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물결은 그대로 흐르고, 순재는 강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지도 않고, 폭풍우를 몰고 오지도 않고, 이미 정해진 일들을 멈추지도 못할 것이다. 많은 물속에 자연스럽게 다시 섞여 쓸려 내려갈 뿐.
- 오하림 <순재와 키완> p.112
 
 
 

출처: 교보문고 인터넷서점

 
 
 
이것이 어찌 어린이 문학에 실릴 수 있는 글이란 말인가. 블로깅 하다가 접하고 읽게 된 책에서 또 다시 받는 진지한 충격을 두 가지 관점에서 표현해보려 한다.
 
 
 

현상 이면의 본질의 문제일까?

 
'짱구는 못 말려'가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모양을 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성인물인 것처럼, 현상 이면의 본질은 다른 모양을 할 때가 많다. 잘 된 선택이든, 잘못된 선택이든 한 순간의 선택이 대단히 놀랍거나 혹은 결코 돌이키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처럼, 우리는 울고 웃고 불안해하고 뿌듯해하며 호들갑을 떨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또한 실은 깊고도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는 하나의 물방울일 뿐이라는 노인의 지혜를, <순재와 키완>의 저자는 어린이들의 귀에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한없이 깊고도 넓은 아동용 그림책도 있고, 성인 독자를 주요 독자층으로 삼고 있으나 생각도 퇴고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듯한 콘텐츠들도 세상에 참 많다.
 
 
 

점진적 혹은 순차적이라는 미신에 대한 반기일까?

 
어린이에게는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이야기만을 들려주어야 마땅한 것이 전혀 아니라고, 세상과 인간에 대해 깊고 넓은 눈을 지닐 수 있도록 아이들의 마음에도 통찰의 씨앗을 열심히 뿌려주어야 한다고, 작가는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알 수 없을지라도 영아기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읽어주어야 하고,  밥상머리에서 자녀들에게 어려운 한자어도 많이 들려주어야 하고, 좀 어려운 문제도 끙끙대며 해결해 보며 실패해 볼 기회도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매우 동의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교사로서 교과교육론 시간에 학습한 Spiral approach(나선형 접근법)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학습자가 학습하기에 적합한 내용으로 교재를 구성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인지적으로 힘에 부치는 '깊이 있는' 사고를 경험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부여해 주는 것이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학생에게 고등 수학을 가르치는 등 과도한 선행학습을 시켜도 된다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다. 나는 기본적으로 선행학습에 매우 반대한다.)
 
세상의 질서와 섭리에 대한 어떤 감각을, 어렴풋한 모양일지라도 각인시켜 주는 수업을 하고 싶다. <순재와 키완>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그럴 것처럼.
 
 
 
도서 비평에서 소명 의식으로 흘러갔지만, 글을 맺는 심정이 매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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