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감독 및 논술형 문항 채점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우울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전년 상반기 대비 서울지역의 학생 자살자 수가 120% 증가했다며, 자살 예방에 만전을 기해 달라는 공문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고사기간 및 방학 전후에 아이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하네요. 시험 스트레스, 그리고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정에서 받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가 우리 아이들을 괴롭게 만드는 주요 원인인가 봅니다.
그런데 공문을 읽으면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우울감의 원인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위와 서열을 계속해서 나누면서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고 있는 교육(특히 평가) 방식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것은 ‘어쩔 수 없으니’ 일단은... 물론 이런 문구가 공문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각급 학교에서 아이들이 자살하지 않도록 잘 보듬어주라는 공문이... 저는 갑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 일단은 계속해서 1등급을 잘 갈라 치기 할 수 있는 변별 문항을 출제하고, 또 전교에서 1명밖에 선다형 만점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쾌감을, 최근에도 느꼈으니까요.)
공문이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시행되면서 ‘업무에 참고할 수 있도록’ 교육청에 참조 문서로 시행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요? 아이들을 극심한 우울감으로 지속적으로 몰아넣고 있는 교육의 큰 흐름을 주관하고 관할하는 기관은 단위학교가 아니고 교육부, 교육과정평가원, 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등 한국의 교육과 평가를 연구하고 정책을 마련 및 시행하는 행정기관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기관을 대상으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공문이 시행 되고, 이것이 각급 학교에 함께 시행 되는 것이 옳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것은 마치... 병균이 득실거리는 환경은 방치해 두면서 감기약 잘 먹이자는 구호만 외치는 것 같달까요?
물론, 말이 쉽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능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수업-평가 방식에 대해 아주 많은 분들이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고요.
그런데, 이제까지 논의가 없어서 자살 학생 수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현상을 가급적 유지’하는 방향에서 진행해 온 이제까지의 논의의 실효성에 대해, 그리고 저 아래 깊숙이 파고들어 아이들의 정신을 옥죄고 있는 뿌리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오늘 고3 교실에서 시험감독을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작종이 친 지 10분 이내에 엎드려 자기 시작하더라고요. (재수를 하지 않는 한) 2학기 내신은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 현 체제에서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의 교실 수업과 평가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자녀 수능 등급 조금이라도 올려주려고 밑바닥 깔아주려는 학부모님들이 함께 치른 수능 등급이, 아이들의 대학수학능력과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딱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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