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 뇔케는 그의 책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서 현대인의 허망하고 불안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립니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뛰어나게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하고 과장하는 데 여념이 없는 사람들은 필시 끊임없이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멋지고 탁월하게 보여야 하는데 실상은 그닥 대단하지 않은 모습이니 실체를 감추기 위해 부풀리고, 떠벌리며 나 이만큼 중요한 사람이야, 라고 과시합니다.
하지만 지혜자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어리석음'이라고 부른다고 하지요. 거짓과 속임수는 언젠가 들통이 나게 마련인데, 결국 들통이 나버릴 때까지 들통이 날까봐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자신의 진면모를 감추고(혹은 굳이 떠벌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뇔케에 따르면 '더욱 정교한' 캐릭터라고 합니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심이 있지 않고,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며 내면을 갈고 닦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마티아스 뇔케는 기사도 및 젠틀맨의 개념을 사용하여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을 묘사합니다.
기사도의 핵심은 기독교 전통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은 겸손이었다. 또한 정중함과 앞에 나서지 않는 신중함도 중요한 덕목으로 요구된다. 이와 같은 토대 위에서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스스로를 낮추고 절제하며 품위를 지키는 기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 마티아스 뇔케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87면
젠틀맨은 ... 따라서 자랑하고 싶은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은 기뻐하는 마음에 재를 뿌리는 게 아니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통제하고 사려 깊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성을 잃고 행동하거나 분노를 터뜨린다 해도, 젠틀맨을 침착하게 대응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그는 사람들을 선동하지 않으며, 균형을 잃지 않는다.
- 같은 책 95면
인용문에 묘사된 기사도와 젠틀맨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지요. 요즘 언어로 표현하면 숨은 고수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고,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이러한 젠틀맨은 타인을 배려하여, 사적인 감정으로 인해 타인을 괴롭게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젠틀맨은 또한 자신의 사적인 감정으로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는다. 상대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 같은 책 94면
한편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의 내적 동기는 비단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에만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타인을 괴롭히려고 연구하는 시간에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걷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훨씬 본인의 영혼과 삶 전체에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영리한 행동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충분한 숙고를 거치지 않고 행했던, 따라서 지나치게 가볍고 즉각적이었던 행동들이 하염없이 떠오릅니다. '하수' 중의 '하수'의, 낯뜨거운 모습이네요. 소망이 없는 저의 매일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에 대한 빌립보서 2장을 인용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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