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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독서 일기 #3 -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문화의 힘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3. 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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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오랜 농담을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집어넣는다.
3. 문을 닫는다.
 
 
러셀 로버츠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읽다가 위의 농담과 같이 다소 허무한 웃음이 나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인간의 수많은 결점을 고치는 방법은, '나쁜 행동을 저지하고 착한 행동을 장려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지만 동시에 허탈해지는 해법입니다. 이론적[혹은 문자적]으로는 매우 타당한 말처럼 보이지만 실현이 대단히 난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러셀 로버츠는 규제와 법률을 통해 '나쁜 행동을 저지'하는 것보다는,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문화'를 통해 착한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논증합니다. 규제했으나 실효성 없는 정책의 예로 미국 사회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여 단속에 나섰던 일을 언급하고요. 엄격한 제재를 시도하였으나 위험을 무릅쓰고 마약을 판매하는 이들의 대담함(!)을 멈출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마약상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으며 마약을 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우리 사회도 마약이 어느새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죠. 미국처럼 마약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일견 학급 경영이나 자녀 교육도 이와 같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성향을 탑재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하지 말라'라고 강제하는 일은 많을수록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례로 저는 학급 학생들에게 욕설을 사용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학년초부터 아주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일단 언어가 거칠어지면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덜 안전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험상궂은 욕설을 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욕설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일부러 사용하는 상황도 폭넓게(?) 지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담임의 권위에 따라주었는데, 사흘 째 되던 날 쯤에는 저의 지도 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반감이 조금 느껴지더라고요. 대체로 무얼 이런 것까지 지도하느냐는 어감의 감탄사나 웃는 표정이었죠. 지도의 실패입니다.
 
그래서 저는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책을 읽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러셀 로버츠가 효과적이라고 언급한 내용과도 제법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문화의 힘'에 호소하자는 것이었죠. 저는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집에 가서 제가 학급을 대상으로 지도한 내용과 학생 반응을 이야기했더니, 저의 자녀들은 곧장 공감하더라고요. '엄마 학급 언니 오빠들이 이해가 돼요.'라고 말하면서요. 그리고 저는 다음 날 학급 학생들에게 (집에 가서 혼났다고 너스레를 떨어가며) 제 자녀들의 반응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학생들이 피식 웃더군요. 아마도 '빡빡한 선생님이 가정에서는 빡빡한 엄마의 모습이시구나. 이것을 선생님의 자녀들도 익히 알고 있어서 우리들의 입장에 공감을 해주는구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제 앞에서 (제가 지도를 하나 안 하나 떠보느라고) 욕설 혹은 그 비슷한 용어를 일부러 사용해 보는 시도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를 지도함에 있어 '강압적으로' 억누르려고 하지 않고 '이해와 공감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져서, 자발적인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 같다는 것이 저의 추측 혹은 바람입니다. 
 
같은 책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그러니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때로는 간섭하지 않고 그냥 놔두는 것일 수도 있다. (279)

 
 
 
교육자로서 교육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기에 위의 문장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때때로 기다림을 통해 자성(自省)과 자발적 돌이킴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래 참음'이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방식임을 또한 알고 있고요.)
 
 
 
그러나 모든 문제를 자발성에 의존하여 해결할 수 없음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죠. 규율이 없는 사회는 곧 무질서의 상태가 되기 쉬우니까요. 그나저나 애덤 스미스는 스스로 수립한 정책 및 규제에 몰입하여 있는 사람을 ‘이상주의자’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사회 요인에 대한 고려 없이 규제와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애덤 스미스가 사용한 ‘이상주의자’라는 용어에 대해 저는 생각 정리가 좀 더 필요합니다.)

각종 사회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대한민국의 “일상 영역에서의” 성숙한 문화 조성을 꿈꿉니다.
 
복되고 평안한 밤과 새 아침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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