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봐도 우울한 소식뿐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해 4월이 가까운 날씨에 눈이 내리고, 미얀마에서는 강진이 발생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폭탄으로 국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삼천리 화려강산과 많은 목숨을 집어삼켰고,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고, 싱크홀이 생겨 사람이 매장되었으며, 편의점에서 젤리를 훔친 아이에 대해 지적하자 "아이를 도둑 취급한다고" 난동을 부린 아버지와 초등생을 살해한 교사와 미성년과 교제 사실을 부인한 연예인이 뉴스 화면을 메웁니다.
모든 질서와 균형이 철저하게 파괴된 듯 보이고, 가치가 실종된 시대에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우리 앞의 현실이 암담하기만 합니다. 이러다 집단 우울증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저는 오늘 철학 서적을 펼쳐들었습니다. 뭐랄까, 세상의 슬픔과 고통이 너무 어두워 아름다운 발레리나와 피아노 치는 소녀를 화폭에 담아낸 르누아르의 심정일 수도 있고,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지나치게 무겁고 참담하여 서정시를 노래한 김영랑 선생의 마음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로마 황제이자 후기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집필한 <명상록>의 12면(올리버 출판사 완역본 기준)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서로 다른 많은 스승에게 배운 점을 나열한 부분인데요, 그중 막시무스에게 배우게 된 점이라고 하네요.

나의 이상형
자제력과 집중력.
역경(특히 질병) 중에서도 잃지 않는 낙관적인 태도.
위엄과 우아함이 조화를 이룬 균형 잡힌 성품.
군소리 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모습.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생각과 말이 같고 악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는 모습.
절대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는 모습. 서둘거나 주저하지 않으며 당황하거나 방황하지 않는 모습. 아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저돌적이거나 편집적이지도 않은 모습.
너그러움, 자비로움, 정직함.
한 방향에 매몰되었다기보다는 가던 길을 계속 간다는 꾸준함을 느끼게 하는 모습.
그 누구에게도 가르치려 든다는 인상을 주지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도 하지 않는 모습.
유머 감각.
상호의 성숙함
저도 누군가에게 이런 모습으로 그려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지는 순간이 왔을 때, 이로 인해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칭찬에 기뻐하지 말라는 내용도 <명상록>에 나오긴 합니다. 칭찬하는 사람은 이러한 특질이 '결여된' 상태이므로 그러한 칭찬에 기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저는 이 생각에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는 사람은 이미 그러한 미덕을 보유하고 있거나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상태일 확률이 높습니다. 제가 저희 학교 학생들이 매우 정중한 태도를 지닌 편이라고 칭찬하는 말을 하자 저의 동료 선생님께서 저더러 '00 선생님은 정중함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또 본인이 정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칭찬하는 것이에요.'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봐 주셨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는 결코 정중하지 않은 아주 많은 순간의 제 모습이 떠올라서 참 부끄러워지긴 합니다.)
둘째, 비슷한 맥락에서, 어떠한 가치를 전혀 추구하지 않아서 해당 특질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타인의 그러한 미덕이 보이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와 같이 밀폐된 공간이나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하는 것을 타인에 대한 '배려'의 개념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도, 조용히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도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교수의 말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네요.
아무쪼록 그래서 이러한 이상형을 함께 지니고, 또 함께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소중한 '구도자'들에게, 이러한 가치를 보유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모습에 대해 칭찬을 받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람의 칭찬을 넘어서
한편 위에서 인용한 막시무스의 모습처럼 '고결한' 한 사람의 모습에서 그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고결해도 유한한 존재이고, 따라서 결국은 허물 투성이일 뿐이며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칭찬을 받고 우쭐해하는 제 모습이야말로 저의 비루한 상태를 여실히 나타내는 지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스스로의 천박함과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우리는 더욱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눈으로 바라보며, 주어진 것들을 참으로 소중히 여길 수도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창조주 앞에 맨발로 나아옵니다. 그리고 세상 죄를 짊어지신 어린 양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세상 모든 슬픔과 탄식이 온기를 머금고 다시 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평안하고 기쁜 밤과 새 날 맞이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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