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 구운 빵 껍질의 균열, 썩기 직전의 잘 익은 올리브에도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무르익어 고개를 숙인 옥수수, 사자의 눈썹, 멧돼지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품.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저마다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균열인데, 이 균열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전체를 이루는 조화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일상은 슬프고 괴로운 일들로 가득한데 하루와 일주일과 한 달이 모인 우리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처럼 여겨지는 것처럼요.
어제는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알폰스 무하를 다시 한 번 감상하고 왔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황도 12궁>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룩과 물감 번짐이 제법 많더라고요.




당시 인쇄 기술력의 한계로 인해, 사용된 색깔의 갯수만큼 석판화를 각각 제작하여 찍어내는 과정을 거쳐서 포스터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시간과 노력이 아주 많이 들었고요, 찍어내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로 인해 이런 얼룩이 쉽게 생겼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흠결 투성이인 작품이, 조금 멀리서 보면 다음과 같이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안을 줍니다. 너무 완벽하려고 낑낑거리며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있으니까요.
이런 균열 말고도 저는 알폰스 무하의 작품들을 들여다보며 발견의 재미를 많이 느꼈는데요, 조금 더 소개해 드릴게요.
먼저, 장식 패널에 그려진 여성의 발에서 무지외반증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하이힐의 흔적인가 봅니다.

한편 다음 포스터의 가운데 약간 흰 부분이 보이시나요? 종이가 접혔다가 펴지는 과정에서 약간 균열이 생긴 것을 문질러서 (여전히 티나지만^^;) 티나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한 것 같네요.

다음의 향수 포스터는 워낙 크기가 커서 종이를 이어 붙인 자국이 있습니다. 당시의 인쇄 기술로는 1미터가 넘어가는 종이는 찍어낼 수가 없어서 이렇게 위와 아래, 양옆을 나누어 찍은 후 연결해야 했다고 하네요. 얼룩도 곳곳에 보이고요.

같은 포스터의 글자 윗부분에도 검정색 얼룩과 물이 번졌던 것 같은 얼룩이 보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요? 그런데 이러한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더 가치있게 여겨진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래되어 낡고 때가 탄 물건에,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의 자취와 기억이 오롯이 담겨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처럼요.

어머나 이 포스터는 이어붙인 부분이 꽤나 어색합니다. 심지어 잉크의 색깔도 다르고, 문양도 조금씩 어긋난 상태네요.

어색한 이음새를 또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좀 어색해도 어떤가요. 왜, 음악도 그렇잖아요. 박자도 음정도 소리 크기도 완벽한 컴퓨터의 연주보다, 기침소리도, 연주자의 실수도 들어간 사람의 연주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던가요.
알폰스 무하가 제작한 성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에 보이는 기도하는 사람은 멀리서 보았을 때 아래 위로 흰 자가 보여 무척 놀란 표정인 줄 알았는데요, 가까이에서 보니 위를[아마도 하늘을] 올려다 보는, 빛을 반사하고 있는 눈동자였습니다.

참, 알폰스 무하가 처음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지스몽다> 포스터 속 사라 베르나르가 한 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것도 발견했어요.

손을 가슴팍에 올리고 있는 것을 보니 십자가를 마음에 소중하게 품고 있는 것 같지요?
저도 상황과 환경에 관계없이 늘 십자가를 소중히 마음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늘 자세히 관찰하며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고요.
복되고 평안한 주말 보내셔요.
참,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리는 알폰스 무하 전은 7월 13일까지 이어진다고 하네요.
여러분께서도 균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려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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