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

명화 감상 일기 - 고흐는 지금도 꿈을 꾸는 중일 거야

글을써보려는사람 2025. 5. 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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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준비를 하고, 또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고 발터가 집필한 <빈센트 반 고흐> 아트북을 읽는 중입니다.

 

 

 

 

 

첫 번째 그림은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1889)

 

 

 

어느 날 밤 고흐는 면도칼을 든 채, 자신과 크게 다툰 뒤 집을 나선 고갱을 따라갔다고 하지요. 고갱을 해칠 생각은 없었고 서운함을 표출할 목적이었다고는 하나 고갱이 기겁을 했던 것은 안 봐도 뻔하지요. 놀란 고갱은 집으로 가는 대신 여관으로 가고,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내 사창가의 한 소녀에게 건네주었다고 하고요. 이 일을 계기로 고흐가 머물던 마을인 아를 전체가 난리가 났다고 하지요. 그야말로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으니까요. 잘린 귀 조각을 받아 든 소녀는 얼마나 끔찍했을는지요.

 

 

한편 매독의 증상 중 하나는 환청과 같은 정신착란 증세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속삭여오는 듯한 소리들과 소음을 얼마나 차단해 버리고 싶었으면,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것일까요.

 

저도 여러 일들로 마음이 편치 않아 신경이 많이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아이들이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조차 듣기가 힘들기도 하더라고요. 같은 사무실 선생님께서 마우스를 패드에 탁탁탁 탁탁탁 내리찍듯 작동하신다거나, 타닥타닥 자판을 세차게 두드리시거나, 책을 탁탁 퍽퍽 내려놓는 소리도 무척이나 크게 들려오기도 하고 말이지요.

 

고흐는 오죽했을까요...

 

그리고 고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기어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더없이 불행한 순간도, 심신이 지극히 쇠약한 모습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태도일까요?

 

 


 

 

 

다음으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아를 풍경이 보이는 꽃이 핀 과수원>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 풍경이 보이는 꽃이 핀 과수원> (1889)

 

 

 

과수원 전경을 포플러 나무 세 그루가 가로막고 있어 고개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내밀어 보아도 과수원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반 고흐가 머물던 정신병원 창문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던 쇠창살을 나무로 승화하여 표현한 것인가 싶기도 하지요. 인고 발터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은 반 고흐의 밀실 공포증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네요. 얼마나 절망스럽고 얼마나 갑갑했을는지요.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내 힘으로 도저히 걷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삶의 일부로 온전히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장벽이 곳곳에 버티고 서서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얼마나 갑갑했을까요.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밀레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제작한 모작으로 유명한 <씨 뿌리는 사람>입니다. 세 작품 중에서는 가장 먼저 그려진 작품이고, 또 저도 본래 포스팅의 가장 앞부분에 실었었지만, 순서를 바꾸어 마지막에 소개해드리기로 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8)

 

 

 

원작인 밀레의 작품도 함께 보시죠.

 

장 프랑수아 밀레, <씨 뿌리는 사람> (1850)

 

 

 

씨를 뿌리는 농민을 화면 가득 담아 씨 뿌리는 행위를 집중적으로 묘사한 밀레와 달리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 그리고 이 모든 길을 따사롭게 비춰주는 태양과 태양빛으로 물든 하늘을 화폭에 함께 담았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씨 뿌리는 사람> (1888)

 

 

중간까지만 이어지고 길이 끊어진 듯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밭의 굴곡진 평면으로 인해 고랑이 감추어져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길이 끊겼으면 아무렴 어떠냐는 듯, 농부는 밀밭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가며 씨를 계속해서 뿌립니다.

 

색상의 대비를 위해 하늘의 색깔(황금빛)과 밭의 색깔(푸른 빛)을 의도적으로 반대로 배치해 놓았다는 설명을 읽고서야 저는 하늘과 토양의 색상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푸른빛으로, 밭의 토양을 황금빛(파종이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작물이 없을 것이므로 황금빛이라기보다는 흙빛에 가깝겠지만요)으로 칠하는 것이 더 '사실적'일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설명을 읽고 난 후에도 하늘빛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찬란한 태양으로 인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과 도로와 건물들을 보며 압도된 어느 날 출근길 아침의 경험이 아주 아주 명확하게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농부에 의해 밭의 곳곳에 흩뿌려진 씨앗에 대해서도 묵상해 봅니다. 비록 씨앗의 일부는 가라지일 것이고, 일부는 까마귀가 먹어치울 것이고, 어떤 씨앗은 기껏 싹을 틔워도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빛에 잎이 타버릴지도 모르지만, 더러 좋은 씨가 땅에 굳건히 뿌리내리게 된다면,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게 되겠지요.

 

 


 

 

 

저는 오늘 글의 제목을 '고흐는 지금도 꿈을 꾸는 중일 거야'에서 '고흐는 지금도 꿈을 꾸는 중일까?'로 글의 제목을 바꾸었다가, 다시금 원래대로 변경하였습니다. 글의 순서와 함께요. 아무리 힘이 빠지고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5월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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